
펑크록 대중화를 이끈 미국의 전설적인 펑크록 밴드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리드싱어 슬라이 스톤이 9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폐 질환으로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향년 82세.
스톤이 1966년 결성한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은 1960년대 말~19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정상급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결성 후 몇년 만에 ‘댄스 투 더 뮤직’ ‘패밀리 어페어’ ‘에브리데이 피플’ 같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각종 음악 차트를 휩쓸었다.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은 당시로써 흔치 않은 혼성 밴드이자 흑인과 백인 음악가가 함께 참여한 밴드로도 화제를 모았다. 당시 스톤은 급진적인 흑인운동단체인 ‘블랙 팬서’로부터 색소폰 연주자인 제리 마티니 등 백인 멤버들을 밴드에서 쫓아내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마티니는 과거 NPR과의 인터뷰에서 “슬라이는 언제나 나를 위해 일어섰고, 나를 구해줬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스톤의 음악은 당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 장르인 펑크록을 기반으로 가스펠, 사이키델릭, 소울, 재즈, 라틴 음악 등을 절묘하게 융합한 실험적 색채로 호평받았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스톤이 40만 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선보인 무대는 아직도 전설로 회자 된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스톤의 음악은 점점 더 우울하고 냉소적으로 변했다. 이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로 인해 인종 갈등이 고조된 것과 무관치 않았다. 이후 스톤은 마약류 소지 혐의로 여러 차례 체포됐으며, 다시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남긴 음악은 이후에도 여러 힙합 가수들이 자신의 곡에 샘플링으로 활용하는 등 후대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2017년 그래미상은 그에게 평생 공로상을 수여 했다.
스톤의 가족은 이날 성명을 내 “우리는 그의 부재를 애도하는 한편, 그의 독창적인 음악적 유산이 여전히 남아있고 후대에도 계속 영감을 줄 것이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