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를 잘라서 바닥에 눕혀놓고, 밑동부터 줄기 끝으로 길게 쪼개기 위해서는 낫이나 칼이 필요하다. 톱을 쓰지 않는다.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먼저 칼날을 사용해 양분(兩分)하기 시작한다. 시작할 때만 칼날이 필요하지, 주로 팔의 힘으로 대나무 결을 따라 찢어야 한다.

작업하는 동안에, 칼등이 두꺼우면 일이 조금 쉬워진다. 벌려놓은 틈새에 간간이 칼이 끼어 갇히기 때문이다. 단단한 마디 연결 부분에선 다시 칼날로 작업한다. 숙련된 이들은 마치 비단을 찢듯 순식간에 쪼갤 수 있다.
이번 사자성어는 파죽지세(破竹之勢. 깨뜨릴 파, 대 죽, 어조사 지, 기세 세)다. 앞 두 글자 ‘파죽’은 ‘대나무를 세로로 쪼개다’란 뜻이다. ‘지’는 ‘~의’란 뜻이고, 끝 글자 ‘세’는 ‘기세’란 뜻이다. 이 네 글자가 합쳐져 ‘대나무를 세로로 쪼갤 때와 같은 기세’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군대가 거침없이 진격하거나, 막힘없이 일이 잘 풀리는 상황에 자주 사용된다. ‘진서(晉書)’의 ‘양호·두예전(傳)’에서 유래했다. ‘진서’엔 사마의(司馬懿. 179~251) 손주가 세운 진(晉)나라 역사가 담겨있다.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마지막 회(回)에 등장하기도 하는 두예(杜預. 222~285)는 진나라 학자 겸 명장(名將)이다. 그의 눈부신 활약 덕에 오(吳)나라 수도가 맥없이 점령됐고, 군웅(群雄)들이 힘을 겨루던 삼국 시대가 마감됐다.
두예가 태어난 해는 유비(劉備. 161~223)가 숨을 거두기 1년 전이다. 당시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이릉(夷陵)에서 대패했다.
두예의 부친은, 조조(曹操) 후손을 제압하고 위(魏)나라 전권을 거머쥔 사마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재주가 뛰어났으나 젊은 시절 두예가 등용되지 못한 이유다. 부친과 사마의가 세상을 뜨자, 그는 사마의의 딸과 결혼한다. 이렇게 사마의 집안과 정략 결혼을 한 후, 두예의 관료 생활도 숨통이 트였다.

오나라 마지막 리더였던 손호(孫皓)는 민심에 반하는 언행을 거듭했다. 이를 하늘이 준 기회로 여긴 사마염(司馬炎. 236~290)은 육군과 수군을 총동원하고 오나라 침공을 개시했다. 사마염은 진나라 첫 황제로 등극한 인물이다. 그러나 당시 오나라 공격에 찬성하는 장수들은 많지 않았다. 촉(蜀)나라가 16년 전에 사라졌지만, 오나라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나라는 수군이 매우 강했다.
겨울에 시작한 오나라에 대한 공격이 해를 넘기고 봄을 맞이했다. 공격을 이어갈 것인가, 잠시 중단할 것인가를 놓고 최전방 사령부에서 회의가 열렸다.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전쟁을 잠시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봄이 되자, 얼었던 강물이 녹아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여름이 찾아오면 강남 특유의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 것이다. 장마철엔 전염병 발생 위험까지 있었다.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전쟁을 이어가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이런 주장들을 경청하던 두예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한다. “현재 우리 군대의 기세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소. 이제 몇 마디만 더 쪼개면, 나머지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벌어질 거요.” 오나라 공격을 책임진 두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아무도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공격을 계속 진행한 결과는 두예의 예상과 일치했다. 방어선을 재정비할 시간을 갖지 못한 손호는 항복했고, 오나라는 멸망했다.
‘공격을 중단하면 안 된다’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두예가 주목한 것은 타이밍(timing)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최종 승리가 그리 멀지 않더라도, 만약 공격을 중단하면 상대방도 대비책을 강구할 시간을 얻게 된다. 방어하기 쉬운 곳으로 오나라가 수도를 옮겨갈 위험도 있었다.
만약 누군가 삶 또는 조직·기업 활동 속에서, 어느 순간 ‘지금이 바로 파죽지세 형국이다’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머뭇거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천재일우(千載一遇)까진 아니더라도, 무척 행복한 순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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