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조인’ 헤스 대령 10주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5-25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한국 공군에는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다. 연락기와 훈련기 등 22대가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의 전부였다. 전투 이틀째인 6월26일 공군 조종사 10명이 급히 한국을 떠나 일본 이타즈케의 미국 공군 기지로 갔다. 그곳에서 미군의 지도 아래 1주일간 ‘벼락치기’로 전투기 조종술을 익힌 한국 조종사들은 7월2일 F-51 머스탱 전투기 10대를 몰고 귀국해 곧 실전에 투입됐다. 당시 한국 조종사들을 가르친 교관이 바로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이다.

1917년 미국 오하이오주(州)에서 태어난 헤스 대령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 당시 공중전에서 맹활약했다. 그가 몰던 F-51 전투기 기체에는 ‘나는 신념으로 하늘을 난다’(By faith, I fly)라는 좌우명이 적혀 있었다. 이를 한국 공군에서 번역한 문구가 바로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다. 조인은 다소 낯선 단어인데 하늘을 나는 새와 사람을 합성한 것으로, 한자 문화권에서 비행사를 비유적으로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1982년에는 ‘신념의 조인’이란 제목의 공군 군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헤스 대령 하면 흔히 따라붙는 별칭이 ‘전쟁 고아의 아버지’다. 1951년 1·4 후퇴로 중공군의 서울 점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가 1000명 넘는 전쟁 고아들을 수송기로 경기 김포에서 제주까지 이동시키는 작전을 입안했기 때문이다. 헤스 대령은 그 뒤로도 전쟁 고아들을 위한 후원금 모금 운동 등에 앞장섰다. 이 사연은 전후인 1957년 미국에서 ‘전송가’(Battle Hymn)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한국 정부는 한·미 동맹 70주년이던 2023년 헤스 대령을 ‘6·25 전쟁 10대 영웅’으로 선정했다.

2015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헤스 대령 10주기 추모 행사가 지난 22일 제주 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렸다. 이튿날인 23일에는 고인의 세 아들(로렌스·에드워드·로날드)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이 “헤스 대령의 공로와 대한민국 아이들을 위한 헌신에 감사드린다”고 인사하자, 유족들은 “아버지는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헌신하셨다”고 화답했다. 헤스 대령이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인물로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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