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남 김해시에 있는 롯데건설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굴착기에 치여 사망했다. 다소 의외였던 것은 발빠른 사측의 대응이었다. 롯데건설은 사고 당일 대표이사 명의로 공개 사과문을 냈다. 고인과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로는 물론 현장안전진단 및 안전대책 수립 등 후속조치까지 포함됐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최근 3년(2022~2024)간 건설현장에서 총 1086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하루 한 명꼴이다. 산재 사망이 만연한 국내 건설업계에서 대기업이 이렇게 빨리 사과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측의 빠른 대응은 물론 칭찬할 만한 일이다. 다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산업재해 엄벌”을 공언하지 않았다면,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는 포스코이앤씨의 사례가 아니었다면, 과연 롯데건설이 사고 당일 사과문을 냈을까. 직전 윤석열 정권에선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정부가 산재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대응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것은 ‘산재 경험이 있는 소년공 출신의 대통령’이 산재를 근절하기 위해 애쓴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죽음마저 정권에 따라 다르게 취급되고, 또 기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정한 현실에 관한 얘기다.
시간을 잠시 뒤로 되돌려보자. 먼저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매년 산재 사망사고의 절반가량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한다. 둘째, 2023년 기준 국내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1.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10개국 평균(0.78‰)의 2배가 넘는다. 근 10년 새 이 같은 수치는 별반 변화가 없다.
윤석열 정권은 산재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산재를 막으려는 노동자들을 탄압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윤석열은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건설노조)을 “건폭(건설 폭력배)”으로 규정했다. 2023년 2월 국무회의에서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지시했다.
주무장관인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술 더 떴다. 건설노조를 향해 “경제에 기생하는 독(毒)” “노동자를 괴롭히는 노동자들의 빨대, 노동자들의 기득권” 등 막말을 퍼부었다. 윤석열의 건폭 발언 후 약 한 달 뒤 열린 전문건설협회 주최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 참석한 원 전 장관은 “정부가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건설노조는 전국의 건설산업 및 건설 관련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다. 2023년 기준 조합원은 7만5000여명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 건설노조의 활동은 산재 사망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될 법한 문제들을 개선하거나 바로잡는 일과 연계되어 있다. 예컨대 건설업체들의 안전관리 소홀,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임금 체불, 무리한 작업지시 등의 문제 말이다.
이런 건설노조를 정부가 범죄자, 파렴치한 집단으로 규정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뻔한 일이다. 경찰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8월(1차), 2024년 4월부터 10월(2차) 등 두 차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이 잡듯 뒤지며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벌였다. 건폭 검거에는 ‘특진’이 내걸렸다.
특별단속 과정에서 대규모 압수수색과 소환, 무리한 기소 등 숱한 논란이 불거졌다. 한 건설노동자는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건설현장의 안전 문제에 대해 민원을 넣었다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노동자가 소환통보를 받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지난해 7월 당시 윤석열 정부에 “정당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건폭몰이가 가져온 것은 ‘더 많은 죽음’뿐이었다. 지난해 상위 20개 건설사의 사망사고는 2023년 대비 25%나 늘었다. 올들어 전국 건설현장에서 1분기(1~3월)에만 100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지난해 사망자 수(328명)를 뛰어넘게 된다.
뒤늦게나마 ‘건폭몰이’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부당한 탄압이 있었다면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저 불법계엄과 내란처럼, 산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다시 벌어져선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