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사전대비·초동대응 모두 실패
경찰, 위험 인지하고도 인파 통제 안 해
보건소·응급의료 지연으로 사상자 급증
행안부, 1.4조 투입한 재난통신망 '무용지물'
[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감사원은 "이태원 참사는 예견된 인파 밀집을 방치한 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초동대응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발생한 인재(人災)"라고 23일 밝혔다. 감사원은 용산구청의 무대응, 경찰의 지연대처, 행정안전부의 재난통신망 관리 부실을 핵심 문제로 지목했다.
감사원은 이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 점검'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먼저 감사원은 "용산구는 방문객 폭증을 예견하고도 인파 관리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사고 직전 밀집 사진을 간부들이 공유하고도 아무 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시작된 밤 10시15분 이후 소방이 NDMS(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를 통해 상황을 전파했지만, 용산구 재난상황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보고·문자 발송이 1시간 넘게 늦었다.
재난문자는 행정안전부 지시 후 78분이 지난 자정 무렵 12시11분에야 발송됐다.
감사원은 "구청장 등 재난책임자 대부분이 재난대응 경험이 없고, 법정 교육도 이수하지 않은 상태였다"며 "사전훈련이 형식화돼 초동대응이 곤란했다"고 전했다.

◆경찰, 위험 인지하고도 인파 통제 안 해
경찰은 참사 나흘 전 이미 '인파 밀집 위험'을 분석하고도 혼잡경비 주력부대(경찰관기동대)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 오후 6시30분부터 압사 우려 신고 11건이 접수됐지만, 이를 유관기관에 공유하지 않았고, 경력 투입도 지연됐다.
감사원은 "현장 경찰들은 인파관리나 혼잡경비 임무도 부여받지 않은 채, 차도로 쏟아지는 인파를 인도로 다시 밀어 올리며 차로 확보에 집중했다"며 "112 신고 공유와 혼잡경비 투입이 지연돼 초동대응이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보건소·응급의료 지연으로 사상자 급증
용산구보건소는 출동 요청을 받고 76분 뒤에야 현장 도착, 재난거점병원보다 늦게 도착했다. 현장응급의료소를 설치했지만 중증도 분류에 참여하지 못했고, 환자 이송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만 몰려 이송환자 91%가 재이송됐다.
감사원은 "보건소장 76%, 신속대응반 90%가 출동경험이 없었다"며 신속 출동하지 못하거나 출동해도 미흡한 현장대응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행안부, 1.4조 투입한 재난통신망 '무용지물'
감사원은 행안부가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1.4조 원 투입)이 "현장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용산구와 소방·경찰은 카카오톡 등 상용망으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재난망은 44회(평균 3초) 사용됐으나 "예, 들립니다" 수준의 응답만 오갔다.
핵심기능인 그룹통화·단말기 간 직접통신(D2D)은 애초 구현되지 않았고, 최초 품질검증에서도 그룹통화 기준 충족률 0%였다.
감사원은 "행안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목표 기능을 포기하고도 준공 처리했다"며 "재난망 사업 추진 방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감사원은 행안부에는 ▲기초지자체 인력충원 및 보상체계 개선 ▲통합형 행동매뉴얼 도입 ▲재난망 사업 재검토를, 복지부·소방청에는 ▲보건소 재난의료 역량 강화 ▲훈련·평가 체계 개편을 각각 통보했다.
감사원은 "정부가 그간 재난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제도․인프라 확대에만 집중하고 실제 현장에서 재난관리를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며 "전문성을 갖춘 재난관리책임자를 채용하고 담당자의 책임,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며 이에 걸맞는 처우를 제공하는 등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park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