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돼 죽은 친구들 흔적이라도···” 96세 할머니의 80년 만의 일본행

2025-12-04

일본 강제동원 됐다 살아남은 정신영 할머니

7일 나고야 ‘도난카이 대지진 추도식’ 참석

전남 나주에 사는 정신영 할머니(96)는 최근 새 여권을 발급받았다. 양심 있는 행동을 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선물할 ‘한국산 김’도 상자째 샀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가 힘들지만 할머니는 오는 6일 80년 만에 일본 나고야 방문길에 오른다.

일제강점기 나고야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전투기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공장에서는 한국에서 강제동원된 소녀들이 맨손으로 미군 공습과 지진의 공포 속에서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을 했다.

나주에서 태어난 정 할머니도 1944년 5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상급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강제동원됐다.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배를 곯아가며 일했다. 월급은 한 푼도 쥐어보지 못했다.

그해 12월7일 오후 1시36분 도난카이 지진이 발생했다. 할머니와 함께 광주와 전남에서 강제동원됐던 소녀 6명도 사망했다. 정 할머니는 “방공호로 대피했으면 살았을 텐데 공장 뒷문으로 도망치다 무너지는 담장에 깔렸다”고 당시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광복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할머니의 마음 속에는 당시 기억이 말뚝처럼 박혔다. 그러다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2020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할머니의 ‘후생연금 탈퇴수당’이라며 농협 계좌에 ‘931원’을 몰래 송금하며 또 한번 대못을 박았다. 할머니는 2024년 1월 1심에서 승소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항소했다.

할머니는 오는 7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도난카이 지진 81주년 희생자 추도식’에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가보고 싶다”며 동행을 결심했다. ‘마음속 짐’ 을 덜어 낼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지진 당시의 공포와 폭격기 굉음 소리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는 정 할머니는 “이제는 지팡이를 짚어야 움직일 수 있지만, 죽기 전에 그때 억울하게 죽어간 친구들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단체들은 자발적 성금을 모아 1988년 12월 옛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공장 한 쪽에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도비를 건립했다.

추도비에는 지진 당시 사망한 59명의 이름과 “이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진실을 여기에 새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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