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 〈71〉더 이상 나에게 묻지마

2025-03-20

동의 피로(consent fatigue) 라는 말이 요즘 자주 쓰인다. 사용자가 온라인 환경에서 개인정보 제공 및 개인 데이터 처리에 대한 동의를 반복적으로 요구받으면서 피로감을 느끼고, 점점 더 기계적인 답변을 하게되거나 무관심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유럽연합(EU)에서 도입한 GDPR와 같은 정책은 세계 개인 정보 정책의 표준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규제 덕분에 사용자들은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하든지 반복되는 질문 공세에 직면하게 되고, 습관적으로 '허용' 또는 '동의'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렇게 기계적 동의 답변을 하는 사용자의 비율은 70~80%를 넘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동의 피로는 사용자 경험과 개인정보 보호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 속에서 발생하는 부작용 중 하나다. 좋은 취지에서 사용자 개인 정보나 접속 환경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공유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짜증을 느끼면서 기계적 답변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무심코 '동의'를 누르는 팝업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질문이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용어이거나 너무 긴 경우가 많이 있다. 팝업창에 기술 용어를 너무 많이 남발하면 사용자가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이렇게 난해한 정보는 자꾸 빠르게 넘어가려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동의를 거부하고 싶어도 그럴 경우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거나 일부만 제공되기 때문에 사용자는 마지못해 동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거나 웹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쿠키 허용 여부와 개인 정보 처리에 대한 질문을 하는 배너 또는 팝업창이 뜨기 마련인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을 갖게되고 웹이나 앱 이용의 만족도도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만족도 저하는 웹이나 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래하고, 사용자의 충성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사용자가 습관적으로 또는 무분별하게 동의 버튼을 누르게 되면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수집되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커진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매번 찝찝한 마음을 억누르며 온라인 정보를 이용하는 셈이다.

동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웹브라우저에 한 번만 희망하는 개인정보 허용 수준을 입력해두면, 새로운 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매번 다시 입력하지 않아도 되며 자신의 프라이버시 설정을 일괄 관리할 수 있는 기술도 소개되고 있다. 사용자가 동의를 거부하더라도 서비스의 중요한 부분을 이용하는데 제한받지 않도록 하고, 동의를 유도하기 위한 교묘한 질문이나 화면상 숨겨진 이미지 파일을 활용하는 것과 같은 기술적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개인 정보 허용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사실상 사용자를 협박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동의 피로가 보여주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긴장은 앞으로 더 심각해 질 가능성이 높다. 창밖에 드론이 떠 있다면 혹시 내 방을 찍고 있는건 아닌지 불안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의 동의를 받아야 내 공간을 찍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로봇이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서 갖다 준다면 고마운 마음도 들겠지만, 내 취향이 기계에 자동으로 학습되는 데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기술이 개인영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만성적인 불안이 되고 있다. 기계가 더 이상 나에게 귀찮은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시에 내 개인 정보는 잘 보호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공존하는 요즘이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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