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열의 정치가 발산하는 도취의 매혹은 의심과 모호함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질문할 필요도, 탐구할 필요도 없다. 무적의 확실성으로 무장하고서 광장에 나서기 때문이다. 자신의 동기와 목표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옳은 쪽에 서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옳음과 분노는 이상적 한 쌍이다. 나쁜 것과 위험한 것을 세상에서 몰아내겠다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서로를 재촉한다.
-조시 코언 『분노 중독』 중에서.
거리에 분노가 너무 많다. 분노와 분열의 정치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부추긴다. 영문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세상을 뒤흔드는 분노라는 감정을 파고든 책이다.

분노는 자신이 옳다는 믿음과 짝을 이루며, 공격 행동으로 표출된다. 분노에는 우선, 자신이 옳다는 철저한 확신에서 분열적이고 편집증적으로 표출되는 ‘의로운 분노’가 있다. 내 분노는 옳고 정당하지만, 다른 사람의 분노는 광적인 망상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과 경험이 있다고 확신할수록 ‘피해가 응답받지 않았다’는 원한이 깊을수록 이 분노는 깊어진다. 그러나 “분노는 가장 옳게 느껴지는 순간, 가장 위험하다.”
반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실패한 분노’도 있다. 실패한 분노는 과장된 친절로 위장하는 ‘수동 공격’으로 이어지거나, 자기도 알지 못한 채 장기적으로 자신을 억압하기도 한다. 좌절하고 억눌린 분노는 정서적·정치적 조종과 악용에 취약한데, 여기서 ‘냉소적 분노’가 생겨난다. 해결되지 못한, 갈 곳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이들이 바깥세상에서 자신이 분노하는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스트롱맨 지도자들이 노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수르코프(푸틴의 정치 책사)의 위업은 러시아를 뒤덮은 무질서한 분노에서 무한한 정치적 보물 창고를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