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머리에 대하여

2025-03-20

말석에 앉아 노자를 읽는다. 노자만큼 도(道)를 강조한 이도 드물다. 흔히 수양이나 처세술로 읽기도 하지만, 내가 듣는 강의에서는 통치술로서의 해석에 방점을 찍는다. 어쨌든 노자 하면 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논어의 첫 글자가 학(學)이라면 노자의 그것은 도다.

둥그렇게 휘어진 세상의 골목과 길. 갈비뼈 같은 저 길이 없다면 서로 통할 수 없고, 통하지 못하면 섬이다. 가슴 안의 꿈도 부풀어 오르지 못하고 세상의 이상도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골방 문화인 게임과 유튜브가 설친다 해도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 일은 이루어진다. 이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자명한 이치이다. 이 우주가 질서 있게 요약된 사회, 그것이 집합적으로 구현된 몸도 마찬가지다. 목숨의 바탕인 몸을 다루는 신비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것이라고 한다. 통(通)하면 살고, 불통(不通)하면 죽는다.

자전에 따르면, ‘道’는 (쉬엄쉬엄 갈 착)과 首(머리 수)가 결합한 글자다. 왜 머리를 접시 같은 곳에 올려놓은 것으로, 사람살이의 근본인 방법, 이치, 근원, 작용, 도덕 등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뜻을 저 글자에 실었을까. 동물의 뿔과 머리를 형용한 수(首)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칼자루, 급소, 끈 등은 물론 범죄자가 잘못을 고백하러 가는 것도 자수(自首)라 한다. 이외에도 시조 몇 수처럼 시문(詩文)의 편수를 세는 단위로도 쓰인다. 물론 가장 으뜸의 뜻은 ‘머리’나 ‘우두머리’이다.

최근 곳곳에 우두머리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뜻은 그럴싸한데 문장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인다. 가령 범죄조직의 우두머리, 못된 놈들의 우두머리. 그런 우두머리가 느닷없이 골방을 뛰쳐나와 설마 대통령의 자리까지 꿰찰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제는 언론을 벗어나 거리의 현수막까지 진출했다. 무정한 봄바람에 춤추듯 흔들리는 저 ‘우두머리’를 바라보아야 하는 답답한 심정!

죄(罪) 있는 곳에 반드시 합당한 벌(罰)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통(通)한다. 미래로 가는 길도 뚫린다. ‘首’자를 생각한다. ‘道’자도 자주 써 본다. 쟁반 같은 어깨, 오십견으로 콕콕 쑤시는 그 위에 얹힌 내 머리의 상태도 늘 수리(修理)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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