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피터 터친 지음
유강은 옮김
생각의힘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하자 다양한 분석들이 나왔다. 그중에는 트럼프의 당선이 러시아가 술책을 부린 결과라고 가정하는 음모론까지 있었다.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의 저자 피터 터친은 난데없이 글로벌 권력의 정점이 된 트럼프의 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모론이 아니라 과학적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개인적 특질과 전술보다는 그를 꼭대기로 밀어올린 심층적인 사회적 힘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우리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안겨 준, 그리고 미국을 국가 와해의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회적 힘은 엘리트 과잉생산과 대중의 궁핍화”라고 했다.

터친은 동물학 박사로 코네티컷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부 교수. 국제정치학이나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복잡성 과학의 접근법을 인간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역사동역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역사동역학은 데이터 과학의 방법을 사용하면서 역사학자들이 편찬한 역사 기록을 빅데이터로 다룬다. 지은이는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300여건의 국가 위기 사례를 분석해 과학적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는 엘리트 과잉생산과 대중의 궁핍화로 인한 국가 위기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적 모델로 현재의 미국을 꼽는다. 미국에선 2016년 대선 당시 대중의 궁핍화가 1992년보다 훨씬 심해졌고 트럼프는 이런 사회적 힘을 현명하면서도 무자비하게 활용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2016년 공화당 예비선거에는 무려 17명의 후보자가 난립했다. ‘권력 소유자’를 의미하는 엘리트의 과잉생산 현상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 지은이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엘리트들 사이의 충돌, 광범위하고 매서운 대중 불만의 방향을 돌린 능력이 결합된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시간을 거슬러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미 대선 승리도 이런 관점에 부합한다. 당시 노예제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남부 엘리트와 북부에서 갑자기 수가 크가 늘어난 신흥 엘리트는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1820년대와 1860년대 사이에 경제 생산량에서 노동자 임금으로 지불된 액수의 비중은 50%나 줄었다. 대중의 궁핍화가 두드러졌다. 불만의 징후는 도처에 나타났으며 사회적 압력은 층층이 쌓였다. 그 결과 폭발한 것이 60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내전 남북전쟁이다.
1850~1864년 청나라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도 같은 이론으로 설명된다. 폭증한 엘리트 계급에 입성하지 못한 홍수전은 반엘리트 세력을 구축해 기근으로 궁핍해진 백성들을 등에 업고 청나라 황제에게 도전했다. 태평천국의 난으로 중국에선 3700만 명이 희생됐으며 청나라는 망국의 위기가 더욱 깊어졌다.
이와 비슷하게 국가가 와해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다. 계엄과 탄핵으로 얼룩진 한국의 최근 정치적, 사회적 혼란도 심상치가 않다. 엘리트들의 분열과 자리 다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는 국가 위기의 분명한 전조임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눈앞의 이익만 탐하는 엘리트들에게 내리는 준엄한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