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라는 것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웰빙연구센터(Wellbeing Research Centre)에서 매년 세계 각국 국민을 상대로 ‘삶에서 얼마나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내놓는 연례 보고서다. 20일(현지시간) 발표된 ‘세계 행복 보고서 2025’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147개국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북유럽 핀란드다. 2018년부터 벌써 8번째다. 10점 만점에 7.736점이란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어 덴마크(7.521점), 아이슬란드(7.515점), 스웨덴(7.345점)이 각각 2, 3, 4위를 차지했다. 7위에 오른 노르웨이(7.262점)까지 포함하면 흔히 ‘노르딕’(Nordic)으로 불리는 북유럽 5개국이 모두 10위 안에 든 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그러니까 국민 소득이 높고 사회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 국민이 역시 행복하구나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경제적 선진국이나 복지국가와 다소 거리가 있는 코스타리카(7.274점)와 멕시코(6.979점)가 각각 6위, 10위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이스라엘(7.234점)의 경우 부유한 것은 맞으나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국가다. 특히 2023년 10월 이후 주변 아랍 국가 및 무장 단체들과의 잦은 무력 충돌로 국민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8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새삼 1989년 개봉한 한국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떠오른다.
‘세계 행복 보고서 2025’에 따르면 어느 한 국가의 행복 지수를 매기는 요소에는 1인당 GDP와 건강한 기대 수명(Life expectancy) 이외에 자유, 사회적 관용, 부정부패 수준 그리고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사회적 지지’란 개념이 눈길을 끈다. 국가별 행복 지수를 평가한 여론조사 기관 담당자는 “행복은 부나 성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뢰, 연결 그리고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를 아는 것 등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지지의 대표적 형태로 “타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꼽았다. 한마디로 언제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지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세계 행복 보고서 2025’에서 총점 6.038점을 받아 147개국 가운데 58위에 그쳤다. 대만(27위), 사우디아라비아(32위), 싱가포르(34위), 베트남(46위), 태국(49위)은 물론 일본(55위)에도 뒤처졌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니 한국은 1인당 GDP는 21위로 제법 상위권에 속했으나 사회적 지지가 84위로 크게 떨어졌다. 사회에 전반적으로 신뢰가 부족하고, 타인과 연결되지 못한 채 고립된 개인이 많으며, 무엇보다 ‘내 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지인을 둔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새삼 “타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보고서 구절이 떠오른다. ‘혼밥’(혼자 먹는 밥)이 더 편하고 좋다는 이도 물론 있겠으나, 혼밥을 자주 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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