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그려야지 하고 욕심내면 안돼. 그러면 그림이 반드시 망하거든.”
고희를 넘긴 작가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는 구도자를 닮았다. 의도도 계산도 없이, 완성조차 계획하지 않은 채 캔버스를 다듬고 돌가루를 갠다. “기초 공사를 많이 한다”는 설명처럼 밑작업은 긴 시간 수십 번을 거치지만 그림의 완성은 순식간이다. ‘무위(無爲)’와 ‘무아(無我)’의 극치에서 찾아오는 합일의 순간, 그는 단숨에 붓을 긋고 혹은 멈춘다.
40대 불혹부터 시작한 작업을 30년 가까이 반복하며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오로지 홀로 선” 어떤 근원이자 본질이다. 작가는 “누구에게도 바라지 않고 무엇에도 기대지 않은 예술만이 나를 홀린다”고 고백하며 “가장 솔직해져야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그의 그림은 자신을 온전히 닮을 수밖에 없다. 투박해 보이지만 너그러운 내면을 품고,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근원을 건드린다. 김근태(72) 작가가 펼치는 추상의 세계다.

‘돌가루 화가’ 김근태가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서 2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작가는 최근까지 직접 만든 ‘돌가루 물감’으로 한국 백자의 매끈한 표면을 백색·황토색의 추상으로 표현한 ‘숨’ 연작과 유화 물감을 캔버스에 두텁게 올린 후 거친 붓질로 재료의 질감을 도드라지게 한 단색조 화면의 ‘결’ 연작을 주로 선보여왔다. 이번에 공개하는 신작들은 ‘숨결’ 연작의 연장선인 듯 보이지만 실제는 작가의 1990년대 작업물과 더 가깝다. ‘숨’ 시리즈에서 자주 선보였던 황토색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흑백의 터치가 주를 이룬다. ‘담론(Discussion)’이라 붙여진 신작의 제목도 1997년 개인전의 출품작들에서 다시 가져왔다.
1997년은 오늘날 김근태의 그림이 태어난 시작점이다. 작품 활동 초기 서구 모더니즘에 천착했던 작가는 1993년 첫 유럽 방문에서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이건 죽어도 내 것이 될 수 없겠다’는 충격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잘 그리는 것 만으로는 안 된다. 한국의 화가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에너지를 느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 ‘나의 그림’은 무엇이어야 하나. 작가는 3년가량 산을 오르며 석탑과 불상을 봤고 우리 것을 돌아봤다. “내 사유를 어떻게 물질화할 것이냐”는 질문을 반복한 끝에 돌가루와 ‘물덤벙(도자 표면에 유약을 붓거나 뿌리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전통 기법)’을 조우했다. 돌가루 반죽에 접착제를 섞어 캔버스에 부은 후 질료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고 때로는 붓을 들고 긋기도 하는 작가의 독특한 작법은 이때 처음 완성됐다.

이후 많은 변주를 이룬 그의 작품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몸이 쇠약해질수록 정신은 ‘나의 그림’이라는 시작점을 향해 더욱 속도를 낸다”며 “돌이켜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일생을 나의 출발점을 찾아가려 했던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년 간 긴 세월 ‘알게 모르게’ 무언가를 쌓아왔고 잘 알지도 모른 채 많이도 그렸다. 그런데 아마 내 몸은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시간을 지나고 나니 내 작업들의 의미를 알 것 같다”고도 했다.
어쩌면 좀 더 단순한 지향점일 수도 있겠다. 작가는 “그냥 나답게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돌가루도 물덤벙도 자연스러운 그대로가 맞춤 옷인듯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케미컬한 색감은 내게 너무 자극적”이기에 작품의 색도 자연의 흑백이 주를 이룬다. 도전도 거침 없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석분의 원재료인 암벽 돌덩이를 설치해 관람객들이 작가의 근원 의식에 더 가까워지는 시도를 했다. 그는 “내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도 솔직히 내가 설치는 안 해봤으니 이런 작업도 내게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림으로 내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며 “언젠가 답을 낼 수 있을지 아닐지 몰라도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4월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