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특별법과 첨단전략산업기금법 등 핵심 산업을 키우기 위한 입법이 줄줄이 무산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 남는 인재가 급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네이버 같은 국내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과 시가총액 점유율도 하락세다. 학계에서는 첨단산업은 국가 안보로 간주해 여야 구분 없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일 미국 시카고 폴슨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AI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지에 잔류한 한국인은 2019년 1%에서 2022년 4%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영국도 1%에서 3%로 증가했지만 캐나다는 2%에서 1%, 유럽은 4%에서 3%로 되레 감소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25개 AI 리서치 기관 순위에도 한국 기업과 대학은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중국은 화웨이(25위)를 포함해 6개 기업과 대학이 순위권에 들었다.
AI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설계 인력 중 한국인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한국경영학회는 반도체를 포함한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의 글로벌 시가총액 점유율은 1.6%로 대만(4.3%)의 절반도 안 된다고 분석했다. 국내 제약사는 0.9%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영달 뉴욕시립대 교수는 “한국은 글로벌 혁신 패권과 산업 지배력의 지각 변동에 대해 깊게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첨단산업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운 국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업한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학회장을 지낸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백악관에서 국가 차원의 혁신 생태계 전략을 입안한 뒤 15년 넘게 정권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해왔다”며 “첨단산업은 개별 기업 혼자서는 못 한다. 산업 분야의 계획만큼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