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걀로 바위를 쳤다. 달걀은 겉껍질에 작은 흠집만 생겼다. 오히려 바위가 쩍 갈라졌다. 고전역학의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르면, 달걀과 바위는 방향이 반대인 같은 크기의 힘을 받는다. 바위와 달걀에 똑같은 힘을 가하면 어느 쪽이 깨질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바위가 깨질 수학적 확률이 0은 아니지만, 사실상 0이다. 무모한 도전이나 뻔한 승부를 가리켜 “달걀로 바위 친다”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스포츠계에는 달걀로 바위 치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있다. 게다가 바위가 깨지는 경우도 꽤 있다. 우리는 이를 ‘반란’이라고도 부른다.
열세 전망 뒤집은 유승민·전북
약팀 반란 주인공 광주·노팅엄
바위 깨던 달걀 시절 기억해야
올해 국내 스포츠계에는 중요한 선거(투표)가 두 차례 있었다. 둘 다 달걀로 바위를 친 셈인데 바위가 깨졌다. 먼저 지난 1월 14일의 대한체육회장 선거다. 유승민 후보(417표)가 이기흥 후보(379표)를 꺾고 새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됐다. 두 후보 간 표차는 38표. 전체 투표수(1209표)의 3%다. 유승민은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대한탁구협회장 등을 지냈다. 이른바 ‘대한민국 스포츠 대통령’으로 부족함이 없는 이력이다. 그래도 3연임을 자신한 현직 회장을 상대하는 건 달걀로 바위 치는 일이라 할 만하다. 결국 바위를 깼다. 17년 전 베이징에서 세계 1위 왕하오를 깨던 순간에 견줄 만했다.
지난달 28일에는 대한체육회 대의원총회가 열렸다. 2036년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지 선정 투표가 있었다. 유력 후보인 서울시는 2019년에도 2032년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지로 선정됐다. 경쟁지보다 준비도 길고,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도 많다. “해보나 마나 한 투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막상 투표함을 열자 전북도가 49대 11로 크게 앞섰다. 전북도의 승리에 관한 여러 분석이 나왔다. 유독 눈에 띈 것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전략. 전북도는 “또 서울입니까”라는 공격적 질문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이 물음 하나가 서울시의 급소를 찔렀다. 다윗도 돌팔매로 골리앗의 급소인 이마를 맞혀 쓰러뜨리지 않았던가.
지난 12일 한국 프로축구 K리그 광주FC가 일본 J리그 비셀 고베와 홈에서 맞붙었다. 아시아 최고 클럽(프로팀)을 가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이었다. 광주는 그 한 주 전인 지난 5일 원정 1차전에서 고베에 0-2로 졌다. 광주는 K리그1(1부리그) 3위 팀, 고베는 J리그1 우승팀이다. AFC는 매년 아시아 각국 리그를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오일머니로 스타 플레이어를 불러모은 사우디아라비아 SPL(사우디 프로리그)이 1위, J리그가 2위, K리그가 3위다. 2차전에서 3-0으로 이긴 광주는 1·2차전 합계에서 3-2로 앞서 8강에 진출했다. 3위 리그 3위 팀이 2위 리그 1위 팀을 상대로 반란에 성공했다. K리그 1위 울산 HD와 2위 포항 스틸러스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한국 축구대표(3월 월드컵 예선 소집 기준) 한 명 없는 광주의 눈부신 성과다.
요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순위표 위쪽에 낯선 팀 이름 하나가 보인다. 노팅엄 포레스트. 현재(18일 기준) 3위다. 로빈 후드의 근거지인 셔우드 숲이 노팅엄에 위치해 팀 명칭이 포레스트다. 노팅엄은 1998~99시즌을 끝으로 EPL(1부)에서 챔피언십(2부)으로 강등됐다. 23년간 2·3부를 전전하다가 2022~23시즌에 챔피언십 4위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EPL에 올라왔다. 지난 두 시즌 EPL에서 다시 강등권을 맴돈 노팅엄이 이번 시즌 반란을 일으켰다. 특히 이번 시즌 우승이 유력한 선두 리버풀(21승 7무 1패)에 유일한 패배를 안긴 팀이다. 현재 순위를 지킨다면 노팅엄은 다음 시즌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간다.
지금껏 나열한 반란은 미완이다. 유승민 앞에는 대한민국 체육계가 당면한 여러 개혁 과제가 있다. 전북도는 IOC에서 서울보다도 강한 다른 후보 도시와 경쟁해야 한다. 광주에는 당장 다음 달 25일 8강전과 이후 준결승전·결승전이 남았다. 노팅엄은 남은 9경기에서도 분발해 시즌을 잘 마쳐야 한다. 그 숙제를 마치면 성공의 축배를 들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개혁 추진에는 거센 반발이 따를 거다. 올림픽을 유치하면 그 뒤로 더 버거운 대회 준비가 있다. 아시안 정상에 오르면 저 너머에 세계 정상이라는 더 높은 산이, EPL을 잘 마친 뒤에는 챔피언스리그 무대가 각각 기다린다. 그때쯤 축배를 들려 하면, 바위가 된 자신을 마주할 거다. 게다가 그 바위를 치려고 덤비는 수많은 달걀을 만날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거든 자신이 달걀이던 시절을 돌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