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하지 못한 뱀은 죽는다’는 말이 있다. 때마다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뱀은 스스로 변화하길 멈추는 순간 도태된다. 푸른 뱀의 해를 맞아 ‘농민신문’이 만난 조은우 ‘복을만드는사람들(복만사)’ 대표의 이력 역시 ‘탈피’를 떠오르게 한다. 조 대표는 식품제조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틀을 깨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그 결과 복만사는 최초로 냉동김밥을 생산·수출하는 선도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제는 식품제조를 넘어 농산물 가공업의 혁신을 꿈꾸는 조 대표를 경남 하동 본사에서 만났다.
- 최근 냉동김밥으로 ‘2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2020년 홍콩에 2만달러어치를 처음 수출했는데 지난해엔 수출규모가 200만달러를 넘어섰다. 생산공장을 짓고 냉동김밥이 국내 시장에서 외면받을 땐 차라리 폭우에 공장이 잠겨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가장 큰 벽은 냉동김밥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 바이어들은 냉동김밥이 즉석김밥보다 급이 떨어지는 식품이고 무조건 저렴해야 한다고 봤다. 냉동김밥은 우리농산물로 만든 건강한 음식이다. 얼렸다 녹여도 맛이 있도록 수분 제어, 급속 냉동 등 공정을 거친 뒤 해동에 용이하도록 개발한 용기를 써 생산원가도 높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수출로 눈을 돌렸다. 2018년 일본의 한 업체가 한국풍 냉동김밥 판매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기사를 보고 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염두에 둔 일이었다. 이전에 ‘대롱치즈스틱’ 사업으로 거래하던 홍콩 바이어를 통해 수출선을 뚫었다.
- 수출국이 20개국에 달한다. 동력이 뭔가.
▶‘비건김밥’이 묘수가 됐다. 처음엔 불고기·제육·달걀 냉동김밥을 홍콩에 수출하고, 국내 휴게소 100곳에도 납품했다. 홍콩은 즉석김밥 가격이 비싸고, 휴게소는 코로나19 시국에 간편하게 팔 수 있기에 판로를 모색했다. 이후 미국·일본 등 바이어와도 접촉했다. 그런데 홍콩과 다르게 미국은 육류 재료에 대한 통관이 까다롭고, 일본은 김밥 재료에 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자연스럽게 우엉유부·잡채·비빔밥·톳두부 등의 비건김밥을 고안하게 됐고 쌀 함량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하던 차에 ‘마켓컬리’가 온라인몰 입점을 제안했다. 비건김밥이 웰빙·다이어트 음식으로 마켓컬리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국제식품박람회를 통해 해외 바이어, 국내 대형 유통플랫폼과 거래를 틀 수 있었다. 나아가 저칼로리, 단백질, 키토제닉, 유대교·이슬람 율법에 따른 식품인 코셔·할랄, 당질제한식 등 기능성 김밥으로 다양한 입맛을 공략했다.
- 해외의 냉동김밥 붐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는데.
▶미국의 대형 식료품 체인인 ‘트레이더 조’가 대량 거래를 제안했었다. 당시 국내외 수요를 맞추기도 벅찬 상황이라 국내 후발업체가 있다고 소개했다. 2023년 그 업체의 냉동김밥이 미국 인플루언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된 먹방(먹는 방송)에 나와 붐을 일으켰다. ‘배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김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복만사에도 기회로 작용했다. 라면 등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는 한류와 SNS를 타고 해외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김밥 역시 이를 기반 삼아 현지인의 입맛을 공략하고, 트레이더 조처럼 신제품 마케팅에 적극적인 유통사를 만난다면 세계적인 대중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복만사는 해외 수요가 높아진 매운맛 중심의 다양한 김밥을 만들어 ‘아마존’ 입점에 도전할 생각이다.
- 값싼 수입 식재료를 써 가격 경쟁을 하는 대신 국산 농산물을 택했다.
▶스물여섯 살에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외식업을 창업한 이후 서울에서도 죽집을 열었다가 실패했다. 하동으로 와 이유식, 지역 명물 빵·호떡, ‘대롱치즈스틱’ 사업을 하며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섰다. 그 와중에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우리 땅에서 난 건강한 농산물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하동에 자리 잡게 도와주신 고(故) 이강삼 슬로푸드 대표의 가르침이 촉매제가 됐다. 항상 농민의 마음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농업과 동반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국산 농산물 소비가 농가소득과 농업경제 안정, 지역일자리 창출, 지역소멸 해소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냉동김밥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출혈 경쟁으로 저품질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그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정성스럽고 예쁘게 고품질 김밥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복만사가 도태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농업과의 동반 성장을 위해 계획하는 바가 있나.
▶농촌지역에서 우수한 농산물로 고품질 가공식품을 만드는 농가나 업체는 많다. 그런데 홍보·마케팅 역량이 부족해 성장하지 못한다. 일회성에 그치는 관련 정부 지원사업이나 마케팅·디자인 회사에만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만 잘 활용하면 농가나 업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AI로 홍보용 팸플릿부터 제품 디자인, 광고 영상 제작, 빅데이터를 토대로 한 제품 개발까지 가능한 시대다. 한국AI마케팅연구소와 협업해 이런 사례를 만들고 확산시키려 한다. 작고하신 이 대표는 농업경제를 발전시키는 ‘농업 대통령’을 꿈꿨다. 그 꿈을 이어받아 농업·농촌이 잘사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할 것이다.
하동=하지혜 기자, 사진=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조은우 대표는…
칠전팔기 끝에 2015년 ‘복을만드는사람들’을 설립했다. 202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냉동김밥을 개발해 수출길을 열었다. 냉동김밥 매출액은 2020년 4억원에서 2024년 100억원으로 뛰었다. 국산 농축산물을 김밥 재료로 활용하는 등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