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외교 넥서스’의 부상

지난 9월 초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준비해온 ‘인공지능(AI) 액션플랜’의 발표가 임박했다고 알려졌다. AI 등 첨단기술의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계획에 AI 외교에 관한 내용이 얼마나 담길지 궁금하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보여준 AI 외교의 적극적 행보로 미뤄보면 참신한 방안들이 포함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 이후 반 년간의 정상외교를 통해 국제사회로 한국의 AI 구상을 전파하는 메신저 역할을 적극 수행했다.
현 정부 출범 후 한국 AI 구상 전파하는 적극적 AI 외교 행보 주목
외교적 선언 그치지 않으려면 지정학 코드 읽는 전략 마인드 필요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첨단기술 외교는 국가안보 연계된 문제
정부 AI 업무, 복잡하게 나눠져 혼란…범정부 차원 업무 공조 시급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말 유엔에서 책임 있는 AI의 개발 및 활용을 위한 국제규범 수립을 촉구하며 ‘모두를 위한 AI’ 비전을 제안했다. 지난달 초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한국이 ‘글로벌 AI 기본사회’를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는 지난달 말 남아공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로 이어져 ‘AI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는 글로벌 AI 기본사회’ 구상을 종합적으로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AI 외교는 지난해 개최된 ‘AI 서울 정상회의’나 ‘AI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고위급회의(REAIM)’ 등에서 그 모습을 내비친 바 있다.
AI와 외교의 결합 간파해야
이러한 행보는 강대국 기술패권 경쟁의 와중에도 AI 기술과 관련된 당위적 가치를 중시한 중견국 규범 외교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외교적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규범적 논의의 지평 밑에 깔린 현실 권력정치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주창한 당위적 구상들은 자칫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특히 미·중 두 강대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올바른 말씀’이 성과를 거두려면 양국이 자신들의 ‘냉정한 이익’을 양보하더라도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틈새’를 공략해야 한다. AI 지정학의 코드를 읽어내는 외교전략 마인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AI와 외교의 결합, 즉 ‘AI-외교 넥서스(nexus)’의 부상을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넥서스의 교차점에 ‘안보 변수’가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 최근 첨단기술 외교는 기술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안보, 군사안보 등 다양한 국가안보 문제들과 연계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첨단기술 외교는 실무부처의 국제협력 업무를 넘어 외교부처의 대외전략 업무로 전환하고 있다. 이미 AI 기술은 동맹·연대·주권·전쟁·평화 등과 같은 지정학적 이슈와 만났다. 이 과정에서 AI-외교 넥서스는 기술적 의도를 바탕에 깔고 미래 국제질서를 주도하려는 외교적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국제질서 주도하는 미국
최근 미국이 제시한 ‘풀스택(full-stack) AI 패키지’ 구상은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풀스택 AI 패키지는 AI 시스템 구현에 필요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플랫폼·서비스까지 전체 기술 스택을 통합해 제공하는 솔루션을 말한다. 지난 7월 미국이 AI 분야의 혁신을 주도하고 자국 표준을 전파하려고 제시한 ‘AI 액션플랜’의 일환으로 거론되면서 세간의 시선을 끌게 됐다. 이는 미국이 중국 견제를 목표로 자국 주도의 AI 생태계를 동맹국들에 부과해 미래 디지털 국제질서를 주도하려는 패권적 구상을 담고 있다. 이 패키지를 단순한 ‘기술 솔루션’이 아니라 ‘외교전략 종합 솔루션’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풀스택 AI 패키지의 핵심은 단연코 AI 모델과 AI 반도체의 연합이다. 미국은 생성형 AI 모델과 GPU 기반 AI 반도체가 결합한 ‘AI-GPU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오픈AI와 구글이 챗GPT-5나 제미나이3.0 등 거대언어모델(LLM)을 출시하고, 엔비디아가 블랙웰 아키텍처로 GPU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 AI 기업들의 혁신 생태계 전략이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돌아서고, 미국 AI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이 통제되는 추세도 주목해야 한다. 과거 1980~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운영체계(OS)인 윈도와 CPU를 장악한 인텔의 연합, 즉 ‘윈텔리즘(Wintelism)’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OS-CPU 패권’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관건은 미국 정부가 나서 미국발 풀스택 AI 패키지의 확산을 외교적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개방형 오픈소스로 추격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제재에도 화웨이의 어센드와 같은 중국산 AI 반도체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딥시크나 큐웬 등 중국산 AI 모델도 크게 약진했다. 이들 모델이 ‘오픈소스’를 내세운 ‘개방형’이라는 사실은 더 큰 논란거리다. 이는 과거 윈텔리즘 시대에 중국이 벌였던 ‘홍기리눅스’라는 오픈소스 OS의 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에는 실패했지만 이번 오픈소스의 도전은 성공할지가 관건이다. 이 도전을 뒷받침하는 중국 정부의 외교적 행보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구상에 맞불을 놓듯이 개도국들을 옹호하는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구축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한 방편으로 지난 7월 ‘AI 분야 유엔’을 연상케 하는 ‘세계AI협력기구(WAICO)’의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그야말로 ‘중국식 AI-외교 넥서스’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AI-외교 넥서스를 내세우며 전개되는 미·중 양국의 경쟁은 앞으로 더 확대·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래 디지털 국제질서의 구축 경쟁으로 비화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중의 풀스택 AI 패키지가 경합하는 구도에서 이른바 ‘한국형 풀스택 AI 패키지’를 자리매김하는 전략이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AI 기본사회’와 같은 규범적 구상이 제시돼야 실질적으로 힘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전략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어려운 숙제다.
기술·외교 부처, AI 업무 공조 안 돼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과제 중의 하나는 AI 등 첨단기술 외교를 수행하는 외교부 내 추진체계의 정비다. 일차적으로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이 크겠지만, 담당 부서들의 분절화 해소도 시급한 과제다. 관련 업무를 다루는 외교부 내 부서가 10여 개로 분산돼 있다. 특히 첨단기술 외교와 기술안보 외교를 다루는 업무가 분리돼 있다. AI를 비롯해 차세대 정보통신, 우주, 플랫폼, 디지털 공공외교, 녹색기술 등을 다루는 제2차관 산하 부서들과 사이버 안보, AI 무기체계, 수출통제, 군비축소 등을 다루는 외교전략정보본부(차관급) 내 부서들의 조직 재정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범정부 차원에서 실무부처와 외교부처의 업무 공조도 큰 고민거리다. 최근에 첨단기술 국제협력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실무부처의 업무가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외교부의 첨단기술 업무도 많아졌다. 그런데 ‘실무부처는 외교전략을 잘 모르고, 외교부처는 첨단기술을 잘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여기에 AI뿐만 아니라 사이버·우주·양자 기술을 담당하는 국가정보원 업무나 국방 AI, 사이버전(戰), AI 방산 등을 다루는 국방 관련 부처들의 업무까지 더하면 범정부 차원의 업무 공조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정부 부처 간 공조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라는 냉소적인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대통령실 AI 컨트롤타워도 분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현재 AI 외교전략을 조율할 컨트롤타워의 기능은 정책실과 국가안보실의 둘로 나뉘어 있다. 첨단기술로서 AI 업무는 정책실의 AI미래기획수석이 담당하고, 기술안보(경제·사이버 안보)로서 AI 업무는 국가안보실 제3차장이 담당하는 구조다. AI-외교 넥서스의 시대적 추세를 고려하면 AI 외교전략 관련 업무를 이렇게 둘로 나눠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된다.
AI-외교 넥서스의 부상에 대응할 국내의 AI 외교 추진체계는 아직은 다소 혼란스럽다. 그나마 국가AI전략위원회에 기대를 걸어 본다. 그런데 여태까지 그 행보를 보면 AI 분야의 ‘국제협력 마인드’는 있는데 ‘외교전략 마인드’는 없어 보인다. 지난 정부와는 달리 국방·안보 분과를 추가하며 기존의 ‘국가AI위원회’가 ‘국가AI전략위원회’로 확대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글로벌 협력 분과와 국방·안보 분과의 간극을 메워줄 ‘외교전략 마인드’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현 정부 들어 힘차게 내디딘 AI 외교가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를 수행할 AI 외교 추진체계의 정비가 시급하다.
김상배 서울대·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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