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어느 날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실시한 2차 핵실험이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아서다. 마침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이 국빈으로 파리를 방문 중이었다. 드골은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국 합류 소식을 흐루쇼프에게 직접 알렸다. “그(흐루쇼프)는 아주 우아하고 점잖은 태도로 말했다. ‘귀하(드골)의 기쁨을 이해하지요. 우리(소련)도 얼마 전에 똑같은 기쁨이 있었지요.’ 그러나 잠시 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귀하도 잘 알겠지만 무척 비용이 많이 들 겁니다!’”(드골 회고록 중에서) 핵무기 연구·개발과 유지·보수에 천문학적 금액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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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집계한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3년 기준으로 640달러(약 93만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가난한 북한이 도대체 어떻게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19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도중 나눈 대화에 답이 있다.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는 카터는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박정희에게 “국민총생산(GNP) 대비 국방비 비율을 북한만큼 올리라”고 권유했다. 당시 북한 국방비는 GNP의 20%에 달한 반면 한국은 5∼6% 정도였다. 이에 박정희는 “만약 우리가 GNP의 20%를 국방비로 쓴다면 당장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한국 같으면 ‘폭동이 일어날’ 상황을 매일매일 수십년간 견뎌 겨우 얻은 게 북한의 핵무기라는 얘기다. 공산당 1당 독재의 위력을 새삼 절감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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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임기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김정은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취임 직후 트럼프는 김정은이 ‘핵 능력’(nuclear power)을 가졌다는 취지로 말해 한국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얼마 뒤 백악관이 ‘미국의 목표는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며 논란은 일단 가라앉았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임이 확실한 가운데 ‘북한 비핵화’를 과연 어떻게 이룰 것인가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일각에선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면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까지 내놓는다.
지난 2월2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반도 안보 : 전쟁 예방과 핵무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는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가 2024년부터 개최하는 일명 ‘나지(나라를 지키는)포럼’의 일환이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천명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국방전문위원은 “우리 안보를 동맹(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독자적 핵 억제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인 한국이 핵무기 개발·보유에 나서는 경우 국제사회 제재를 피할 수 없으므로 천 위원은 ‘핵 잠재력 확보’를 대안으로 들었다. 이는 핵무기를 실제로 갖고 있지는 않되, 유사시 단기간에 핵무기를 만들어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트럼프와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와 종전 협정을 맺지 않으면 더는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겠다”는 매몰찬 말을 들었다. 한·미 동맹이 지금은 굳건하다고 하지만 트럼프가 앞으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만큼 우리도 핵 잠재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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