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공과 실패, 미래의 자리는?

2024-10-24

한국은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모로 특이한 나라다. 산업화, 민주화에서 모두 세계사에 전례 없는 압축적 발전을 이뤄냈다. 지금 한국의 노장층 세대는 최빈국, 중진국, 선진국의 삶을 모두 살아본 세계 유일의 존재들이다. 해방 후 분단, 전쟁, 혁명, 재건, 산업화, 민주화, 촛불시위, 탄핵의 길을 질주해 오며 한때 재정의 절반 이상을 원조에 의존했던 나라가 이제 제조업 5대 강국, AI 6대 강국, G10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초고속 질주, 발전이었으며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모델로 삼고 있는 성공신화를 써왔다. 대학진학률 세계 1위로 국민 개개인들이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 성공만큼 실패도 깊은 나라

지금의 당면 문제 제대로 해결하면

세계 중심국으로 부상할 수도 있어

정치의 세대교체, 시스템 혁신 필요

그러나 성공의 높이만큼 실패의 구렁도 깊다. 초저출산율, 초고속 인구고령화, 빈부격차, 갈등사회, 분노사회, 불신사회…. 세계적·세기적 성공을 이룬 대한민국은 지금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의 무게도 가히 세계적·세기적으로 심각하다. 환경오염, 탄소중립이 지구촌의 과제가 되어있는 지금 1인당 탄소배출량 세계 2위,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 세계 3위에 올라있다. 사회적 갈등과 불신은 OECD 최고수준이며, 출산율은 일찍이 인류사에 없던 최저수준이다. 초고령화 국가인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는 더 빠르다. 수도권 인구집중률, 자살률 역시 OECD 최고다.

한국은 또한 지금 일고 있는 세계질서 변화의 풍랑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미·중 갈등 심화와 신냉전시대의 대두, 다자주의 질서의 퇴조는 어느 나라보다 우리에게 큰 위협을 주고 있다. 인류를 공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미, 중,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에 집중되어 있으며, 북한의 핵개발은 이 지역의 연쇄적 핵무장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제국주의와 냉전의 유산인 남북분단과 대립, 극렬한 상호비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휴전선은 세계에서 중화기가 가장 집중된 지역이다. 한국의 오늘이 있게 한 자유주의 무역질서, 생산공급망의 글로벌화, 중국의 고속성장은 이제 퇴조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길을 걸어오며 번영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막강한 동맹의 후원이 있었다. 이제 미국은 자신의 문제를 돌보기에도 힘겨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청교도적 시민정신, 국제평화와 질서유지 능력은 쇠퇴하고, 빈부격차 및 이민으로 인한 갈등, 월가와 산업의 이해관계가 미국정치와 대외정책을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맹을 줄 세우며 양극 대립체제로 몰아가는 세계질서는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이 심각하게 앓고 있는 이 병들은 우리만의 병은 아니다. 여기에 우리의 기회와 희망이 있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게 앓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맞서서 스스로 생존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히 오늘날 세계가 당면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며 세계의 중심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명의 길을 열어갈 수도 있다(김진현 『대한민국 100년 통사』, 2024).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의 여러 상황을 보면 결코 낙관적이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보여준 성공유전자를 보면 불가능하다고만 할 수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이를 해낼 수 있는 좋은 입지에 서 있기도 하다. 동양의 유교 전통을 가진 나라 중 한국처럼 서양식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도, 한국만큼 서양종교인 기독교도가 많고, 유교·불교·기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해외 기독교 선교활동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우리는 동서양 문화의 융합으로 새로운 문명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입지에 놓여있다. K컬처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국문화가 아니라 글로벌 문화가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 도전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뛰어넘어야 할 높은 장애물들이 많다. 비방과 배타의 문화에서 포용과 협력의 문화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성공은 국민들이 과소비보다 절제를 늘려가야 거둘 수 있다. 민족주의보다 세계시민의 입장에서 보고 그 역할에 무게를 두어야 가능할 수 있다. 국가 리더십의 시계가 지금보다 훨씬 길어져야 하며 국제정세 통찰력, 타협과 갈등조정 능력, 정밀한 추진력을 갖춘 지도자가 부상해 국민들의 에너지와 역량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당면한 과제들을 일관성 있게 추진, 해결해 나가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헌을 통한 국가지배구조 개편, 국가시스템 운영방식 혁신, 그리고 정치의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갈등과 정체에서 화해와 타협, 디지털시대의 리더십으로 넘어가야 우리가 당면한 심각한 도전을 극복하고 미래세계의 중심적 역할을 꾀해 볼 수 있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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