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과 2028년 LA 올림픽 개최를 앞둔 미국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12일 칼럼을 통해 “스포츠 외교의 전통적 명분은 ‘개방’과 ‘환대’에 있지만, 현재 미국은 국경을 닫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세계주의 기조 아래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들은 ‘불청객’을 맞이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마 존 가디언 칼럼니스트는 “세계 스포츠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무대에 올라서기를 수십 년간 갈망해 왔지만, 정작 그 무대 위엔 외부 세계를 거부하는 주최자가 앉아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클럽월드컵 결승전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에는 FIFA가 트럼프타워에 미국 지사를 열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가디언은 “외형적으로만 보면 미국과 세계 축구계는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내면은 불협화음으로 가득하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2026 월드컵을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특별한 대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웃 국가인 멕시코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공동 개최국인 캐나다를 향해 ‘영토 편입’까지 언급하는 등 상식 밖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긴장이 클수록 대회가 더 흥미로워진다”고 트럼프 발언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입국 금지 조치로 인해 쿠바 여자 배구 대표팀은 푸에르토리코 입국이 거부됐고, 브라질 탁구 세계 챔피언은 미국 대회 참가 비자를 받지 못했다. 세네갈 여자 농구대표팀은 미국에서의 훈련 캠프를 취소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가디언은 “국제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국경을 초월한 상호 교류와 문화적 통합을 전제로 한다”며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처럼 ‘지구촌 축제’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이벤트에서 이러한 폐쇄성은 그 자체로 국제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스포츠 외교는 ‘핑퐁 외교’처럼 정치보다 앞서 세계를 연결해왔지만, 지금 미국에는 그런 여지가 없다”며 “트럼프의 미국은 ‘큰 공(Big, Beautiful Balls)’만 있을 뿐, 외교는 없다”고 비판했다.
세계 스포츠는 오랜 시간 미국이라는 시장을 공략해왔다. 크리켓은 2004년부터 미국 진출을 위해 ICC가 ‘프로젝트 USA’를 운영했고, F1은 3개 미국 내 그랑프리를 포함한 달력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헐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를 동원한 영화까지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최근 발표된 글로벌 F1 팬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팬 수는 2024년 대비 10% 증가한 5200만 명에 이르렀고, 이들은 세계 어느 팬층보다 콘텐츠 몰입도가 높았다. 가디언은 “이러한 투자와 성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배타적 태도 앞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을 정복하라”는 스포츠 산업 숙원은, 정작 미국이 세계를 향한 문을 걸어잠그는 순간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생일을 맞아 군사 퍼레이드를 열었고, LA에 주 방위군을 파견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단지 정치 쇼를 넘어, 향후 열릴 올림픽이나 월드컵까지 정치적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낳고 있다. 가디언은 “글로벌 스포츠는 미국이라는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지금 그들은 ‘환영받지 못한 손님’이 되어가고 있다”며 “초대는 받았지만, 문 앞에서 거부당하는 이 기묘한 상황은 세계 스포츠 외교에 경고를 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미국이라는 무대에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특히 그 무대를 통제하려는 자가 손님을 원치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고 트럼프 정부를 재차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