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이주민 지원의 사각지대는 어디인가

2025-12-17

바보의나눔 ‘사각지대 이주민 지원’

한국 사회에서 이주배경 인구는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는 지난 8일 국내 이주배경인구를 처음으로 집계한 ‘2024년 이주배경인구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주배경인구는 271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2%를 차지했다. 인구 20명 중 1명은 본인 또는 부모가 외국인인 셈이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이주배경 인구는 전년 대비 5.2% 늘어나 총인구 증가율(0.1%)의 50배에 달하는 증가세를 보였다.

이주민 지원 체계는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이주민 지원 정책은 등록된 체류 외국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미등록 이주민과 난민, 단기 체류자는 공적 지원 체계에서 배제돼 있다. 이로 인해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귀국도 생존도 어려운 사람들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A씨는 같은 국적의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다. 상태가 위중해 귀국도 어려웠다. 외국인 신분인 아이에게 적용되는 병원비는 내국인의 최대 10배에 달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가구 소득은 절반으로 줄었고, 비자가 만료되면서 아이는 미등록 아동이 됐다. 매달 수백만원의 치료비가 필요했지만, 정부의 장애인 지원은 받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최소한의 안전망은 민간에서 마련되고 있다.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곳은 중간지원조직인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이다. 바보의나눔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정신에 따라 2011년 이주민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공모배분사업에 ‘사각지대 이주민 지원사업’ 분야를 공식적으로 신설해 현장의 소규모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함께한 단체는 총 144곳, 누적 지원액은 약 60억원에 달한다. 단체당 최대 3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이미선 바보의나눔 나눔사업파트장은 “이주배경 장애인, 미등록 아동, 무국적 위기 여성 등 시대 변화에 따라 가장 취약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발굴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바보의나눔이 특히 주목한 분야 중 하나는 ‘의료 사각지대’다. 이주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광주이주민건강센터, 올프렌즈 등 현장 단체와 협력해 무료 진료소와 이동 클리닉 운영을 지원해왔다. 만성질환자 관리와 건강검진, 보건 교육, 예방접종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체계를 뒷받침한다. 임신·출산을 앞둔 이주배경 여성 역시 주요 지원 대상이다. 정금자 성모의집 원장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이주민은 자연분만만 해도 약 500만원, 응급 수술을 하면 1000만원까지도 든다”며 “바보의나눔 배분사업을 통해 분만 전 검사비와 출산 의료비, 아기의 분유·물티슈·기저귀 등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민간 지원을 넘어 제도 개선으로

사각지대는 이주배경 아동들이 청년기로 접어드는 순간에도 드러난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영유아기에 입국한 이들은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체류 자격을 확보해야 하는 벽에 부딪힌다. 유학생 비자(D-2)나 인도적 체류 허가(G-1-6)를 통해 체류를 이어갈 수는 있지만 일상 곳곳에서 어려움이 나타난다. 내국인보다 비싼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며, 비자 조건상 아르바이트도 쉽지 않다. 김다영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활동가는 “학교와 지자체, 민간 영역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장학금은 대상을 국내 국적자로 한정해 이주배경 대학생들은 마땅한 지원처를 찾기 어렵다”며 “2025년 한 해 바보의나눔 지원금으로 50여 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한 학기 최대 2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바보의나눔과 현장 단체들은 단기 지원을 넘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장애 이주민 지원사업을 펼쳐온 이주민과함께는 지난 9월 이주 인권 단체와 장애 인권 단체, 법률지원 단체들과 함께 ‘장애이주민 권리보장 네트워크’를 발족하고, 간담회와 캠페인 등을 통해 공론화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진숙 이주민과함께 상임이사는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현장에서 확인된 문제를 토대로 정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지원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권 바보의나눔 상임이사는 “모든 인간은 존엄한 존재로, 어떤 이유도 배척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바보의나눔은 앞으로도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메우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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