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최근 기판을 사용하지 않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공개해 업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판을 쓰지 않는다는 건 주기판이나 인터포저와 같은 부품이 앞으로는 필요 없다는 걸 뜻해 현실화될 경우 산업 격변이 예상돼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지난달 미국에서 가진 기술 콘퍼런스에서 '시스템온웨이퍼-X(SoW-X)'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기술은 인공지능(AI) 반도체 패키징에 쓰이는 중간기판(실리콘 인터포저)과 주 기판(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 없이 웨이퍼 단에서 주요 반도체를 연결하는 게 골자다. TSMC는 SoW-X 기술을 2027년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현재 AI 반도체 칩은 중앙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두고, 주변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배치해 만든다. GPU와 HBM은 하단에 실리콘 인터포저를 둬 연결하고, FC-BGA 기판을 추가해 AI 반도체가 다른 부품들과 연결, 작동하도록 하는 구조다.
그런데 TSMC가 개발 중이라고 밝힌 SoW-X는 인터포저와 주기판 없이 웨이퍼 상에서 GPU와 HBM을 직접 연결하는 개념이다. 반도체를 만드는 웨이퍼 자체에서 연결하기 때문에 기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TSMC는 애플 반도체 칩을 패키징했던 '통합 팬아웃(InFO)' 기술을 토대로 SoW-X를 개발 중인 것으로 보인다.
TSMC 발표는 업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반도체 구현에 기판이 필수였고,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데 TSMC 신기술 때문에 시장 판도가 바뀌는 게 아니냐는 분석에서다.
FC-BGA만 따져도 올해 세계 시장 규모는 10조원에 이른다. 또 AI 영향으로 2030년까지 시장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차세대 AI 반도체 기판으로 유리기판까지 상용화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TSMC가 내놓은 기술과 파장에 이목이 집중됐다.
TSMC의 SoW-X가 실제 기판을 대체한다면, 성장세를 이어왔던 반도체 기판 업계 변화가 불가피하다. 국내 기판 제조업체 뿐 아니라 일본·대만 등 핵심 플레이어의 주요 사업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게다가 기판 자체가 배제되다보니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유리기판 역시 빛을 못 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SoW-X가 상용화하기 쉽지 않아 보이고, 실제 상용화가 이뤄져도 활용이 제한적이란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우선 생산성과 비용 문제가 지목된다.
강사윤 인하대 특임교수(전 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장)는 “웨이퍼 단에서 대면적 패키징이 이뤄지는 만큼 휨(워피지) 현상을 제어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기술 난도나 수요 측면에서 시장 전체에 확산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반도체는 면적이 큰 데, 이를 웨이퍼상에서 다루는 게 기술적으로 어렵고, 된다 해도 특정 분야에 한정될 것이란 관측이다.
또 상용화 전까지 비용 효율성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패키징 업계 관계자는 “공정 난도가 높아 비용이 크게 상승할 경우 시장에서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기술 개발 진행 상황을 면밀히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TSMC 기술은 프로토타입이나 실물 데모가 공개되지 않아 기술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기술 개념은 TSMC가 작년 기술 콘퍼런스에서도 공개한 바 있다. 올해도 큰 틀에서 로드맵이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판 업계에서는 TSMC 기술이 기판을 대체하기 보단 '공존'을 예상한다. 반도체 시장이 다각화된 만큼, 용도에 따라 필요한 패키징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팬아웃·플립칩·와이어본딩 등 패키징 기술이 모바일·서버·전장 등 제품에 맞게 함께 성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SoW-X는 슈퍼컴퓨터와 같은 일부 고성능컴퓨팅(HPC)에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기판 업계 관계자는 “FC-BGA와 유리기판은 고유 특성과 안정적 공급망, 범용성이라는 강점으로 바탕으로 향후에도 안정적 수요를 유지할 것”이라며 “SoW-X가 이를 대체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성능 패키징 수요를 충족시키는 보완적 관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