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국가신인도

2025-01-12

12·3 비상계엄 선포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가신인도가 낮아지면 정부나 국내 기업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할 때 내야 하는 금리가 올라가고, 외국인 투자는 줄어들기 때문에 많은 염려가 있었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줄달아 한국의 국가신인도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가신인도는 어떻게 평가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올까?

엄격하게 말하면 국가신인도는 정부가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빌린 후 국채에 대한 이자를 무난하게 지급하고 원금을 갚을 수 있을지를 평가한다. 대표적인 국제신용평가기관으로는 미국의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가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신인도를 평가할 때는 첫째로 국가가 전반적으로 이자를 적시에 내고 원금을 계약에 따라 갚을 수 있는지 국가의 경제 여력, 즉 경제환경과 경제성장률을 본다. 또 국제시장에서 달러로 자금을 빌렸으면 달러로 이자와 원금을 지급해야 하므로 국가에 달러가 충분히 들어오는지를 무역과 경상수지, 국제투자와 국제자본의 흐름을 통해서 확인한다. 그리고 정부가 이자와 원금을 낼 여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부의 재정 흑자나 적자, 그리고 국채의 전체 규모를 본다.

우리나라는 1997년 해외 대출을 갚을 경제적 여력은 충분했지만 달러가 부족했기 때문에 국가신인도가 떨어져 외환위기를 맞았다. 반면 12·3 비상계엄 사태로 갑자기 발표됐다가 철회된 계엄령은 국내 생산이나 수출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아 우리나라가 국채나 이자를 갚는 여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따라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이번 계엄령이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늘고 있다. 정치적 혼란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치적 대립이나 혼란 때문에 국가신인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2023년 피치는 미국의 국가신인도를 한단계 내렸는데 이는 미국의 경제 여력이 떨어졌거나 국채가 너무 많이 증가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반복되는 정치적 교착 때문이었다. 미국 의회는 국채의 증가를 통제하기 위해 국채발행금액 상한선을 두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상한선을 높여야 할 때가 있는데 일부 의회의원들은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빌미로 상한선의 상향 조절을 늘 막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가 마비되면서 정부가 제시간에 이자를 지급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자 피치는 미국의 국가신인도를 하향 조절했다.

2024년 12월에는 프랑스에서 총리 불신임안이 가결돼 내각이 총사퇴하고 정치적 분열이 심화됐다. 프랑스 정부는 국채 이자를 제시간에 지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늘어났고, 무디스는 프랑스의 국가신인도를 하향 조절했다.

보다시피 정치적 교착이나 혼란이 국가신인도 하향 조절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국채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대체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인도가 하락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적 분쟁으로 정부가 마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국가신인도가 하향 조절될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할수록 하향 조절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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