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오전 영하의 강추위가 몰아친 캐나다 밴쿠버 시내 곳곳에는 ‘트럼프에게 꺼지라고 말해라(Tell Trump to toque off)’라는 문구가 쓰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토크(toque)’는 캐나다식 털모자를 의미하는데 ‘토크 오프(toque off)’에는 ‘손 떼라’ ‘꺼져라’라는 비유적 의미가 담겨 있다. 캐나다를 상대로 25% 관세 부과를 언급하고 심지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며 조롱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문구다.
이날 주밴쿠버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캐나다 시민들은 ‘캐나다는 강하다(Canada is Strong)’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연이어 구호를 외쳤다. 캐나다 국기를 손에 쥔 한 시민의 얼굴에는 뜨거운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우리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는 계속 저항할 것”이라며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밴쿠버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웬디 리 씨는 “최근 들어 부쩍 미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가속화하는 분위기”라며 “먹거리·생필품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흔하게 가던 미국 여행을 취소하거나 ‘캐나다는 매물이 아니다(Canada is not for sale)’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카트에도 녹색 태그가 붙은 캐나다산 제품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며 “이것은 경제 전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주권에 대한 위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마트에는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캐나다산(PRODUCT OF CANADA)’ ‘국산(LOCAL)’이라는 커다란 태그가 곳곳에 달려 캐나다산 제품 구매를 독려하고 있었다. 미국산 주류와 주스를 진열장에서 뺀 상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의 타깃은 미국, 특히 공화당 지지세가 우세한 ‘레드 스테이트’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들로 플로리다 오렌지 주스, 잭다니엘, 바카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들이다.
온라인에서도 ‘미국산 불매운동’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었다. 고객들이 국산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트에 진열된 물건에 ‘캐나다산’ 여부를 표기해 달라는 청원에 9일 현재 1만 4000여 명이 서명했다. 데이비드 이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25% 관세는 양국의 역사적 유대에 대한 완전한 배신이자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에 대한 경제 전쟁 선포”라며 미국 주류 구매를 즉시 중단하고 기업들에 미국 상품과 서비스 구매를 멈추라고 지시한 지 일주일 만이다. 청원서를 작성한 닐 차우한 씨는 “지역 농부와 생산자를 지원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태그를 달아 캐나다산 제품을 더 쉽게 식별하고 선택함으로써 이 무역 전쟁을 견뎌낼 수 있다”고 청원 이유를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밴쿠버가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뿐만 아니라 온타리오·퀘벡 등 캐나다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약 및 국경 문제를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양국으로부터 보완 조치를 약속받고 시행을 30일 연기한 상태지만 분위기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합병하길 원한다는 발언을 재차 내놓으며 캐나다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캐나다인 마티아스 닐 씨는 “불매할 미국 제품들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있다”며 “평생 이토록 반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