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값 급등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가 비축미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계약 방식을 놓고 정부와 일본농협(JA)이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2022년산 20만t, 2021년산 10만t 등 정부 비축미 30만t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장에 풀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5월31일부터 이토요카도·아이리스오야마 등 대형 유통업체 매장을 통해 판매가 시작됐다. 5㎏ 기준 일반미 가격이 4000엔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비축미는 2160엔 수준으로 책정돼 준비된 물량이 빠르게 소진됐다. 현재 대형 소매업체뿐만 아니라 중소 업체와 동네 쌀가게 등에도 물량이 순차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 비축미는 경쟁입찰을 통해 시장에 풀렸고,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JA전농)가 전체 낙찰 물량의 90% 이상을 차지해 유통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일본 농림수산상(장관)이 JA를 배제하고 정부 주도의 고강도 가격 안정 조치를 시행하자 JA 측이 반발하고 있다.
JA 후쿠이현 연합회와 중앙회는 5월말 기자회견을 열어 “비축미는 재해 대비용 비상식량으로 평시에 대량으로 방출하면 유사시에 대응이 어려워진다”며 정부의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기존의 유통망을 무시하고 대형 유통업체와 직접 계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서도 “JA를 배제한 부당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일본 내 여론은 대체로 냉담한 분위기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JA가 쌀값 유지를 위해 비축미 유통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것 아니냐”는 소비자 비판이 나오며 JA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JA 측과 일부 전문가들은 공급 지연의 책임을 JA에만 돌리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보유한 비축미의 대부분은 동북지방의 양곡창고에 보관돼 있는데, 수요가 몰리는 수도권과 간사이 지역까지 운송하는 과정에서 트럭 운전기사 부족과 물류 지연 등의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또한 현미 상태로 저장된 비축미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려면 정미, 포장, 안전성 검사, 품종 블렌딩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관련 작업을 감당할 정미 가공시설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조급한 정부 비축미 공급으로 품질 관리가 미흡해질 경우 일본산 쌀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상품화를 위해서는 최소 수개월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정책 속도 조절도 촉구하고 있다.
농가들 사이에서는 2000엔대의 소비자가격으로는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렵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저렴한 쌀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는 이해하지만 오랜 기간 쌀값 침체에 시달려온 터라 “이처럼 낮은 가격으로는 쌀농사를 지속할 수 없다”는 농가 반응이 잇따른다.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은 “농가가 재생산 의욕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쌀 가격이 설정돼야 한다”며 적정 가격과 안정적인 공급의 균형을 강조했다.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도 “생산자 보호 없이 가격만 낮추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입장을 내놨다.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도 “농가 소득 보전과 함께 본질적인 농정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일본) = 김용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