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대한 대응책으로 유럽연합(EU) 준비 중인 보복관세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텃밭인 ‘레드 스테이트(red state)’를 정밀 타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9일(현지시간) EU집행위원회가 작성한 문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EU가 미국산 수입품에 최대 25% 관세 부과를 고려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221억유로(약 36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이가운데 미 공화당의 정치적 텃밭인 ‘레드 스테이트’ 수출에 입힐 타격이 최대 135억달러(약 19조원) 상당으로, 관세로 타격을 입을 피해액의 절반 이상이 레드 스테이트에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폴리티코는 “EU의 대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공격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트럼프의 지지기반에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수동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논평했다.
EU의 관세부과 대상 1순위는 미국산 대두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콩 생산국이자 수출국인데, EU 관세는 이미 중국의 보복 조치, 가격 하락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미국 대두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EU에 대한 미국 대두 수출의 82.5%는 미국 하원 의장인 공화당의 마이크 존슨 의원의 지역구인 루이지애나에서 나온다고 폴리티코는 짚었다.
EU는 또한 레드 스테이트로 분류되는 캔자스주와 네브래스카주의 쇠고기, 루이지애나주의 가금류, 미시간주의 자동차 부품, 플로리다주의 담배, 노스캐롤라이나주·조지아주·앨라배마주의 목재 제품을 관세 타겟으로 삼았다. 이에 더해 애리조나의 아이스크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손수건, 앨라배마의 전기 담요, 플로리다의 넥타이, 위스콘신의 세탁기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별 상호관세는 9일 0시1분(한국시간 9일 오후 1시1분)부터 발효됐다. EU에는 20%의 관세가 적용됐다. EU는 상호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상호 무관세’를 제안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 나서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응책으로 보복관세안을 준비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7일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며 “상호 무관세를 제안했다”고 밝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제안이 충분치 않다면서 미국의 대 EU 무역적자액인 3500억달러(약 515조원) 어치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한다면 고려해보겠다며 일축했다.
9일 EU 회원국들의 투표를 통해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 품목과 관세율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폴리티코는 EU의 새로운 안에 큰 반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U의 안이 회원국들의 승인을 얻으면, 미국에 대한 관세는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였던 2018년 처음 부과됐지만 2021년 중단한 크렌베리와 오렌지주스 등에 대한 관세가 오는 15일 발효될 예정이며, 25%관세는 5월16일부터 철강, 육류, 폴리에틸렌 등에 대해 부과된다. 미국에 가장 큰 타격을 줄 대두와 아몬드에 대한 25% 관세는 12월1일 발효 예정이다. EU가 관세 부과 대상에 시간차를 둔 이유는 미국과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