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간호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정부가 여전히 PA(진료지원) 간호사가 담당할 업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법 시행 전에 PA 간호사 업무에 대한 입법예고, 국민 의견수렴, 법체저 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아직 입법예고조차 하지 못했는데, 시간에 쫓겨 졸속 처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25일 간호법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안 입법예고를 했다. 지난해 9월 제정한 간호법 시행에 필요한 규칙 등을 발표한 것인데 정작 가장 주목 받은 PA 간호사가 담당할 업무의 세부 기준·내용은 빠졌다. 복지부는 “관련 단체 및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토대로 하위법령(안)을 마련 중인 상황”이라며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입법예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초 PA 간호사 업무에 관한 시행규칙은 ‘3월 말’ 발표가 유력했다. 입법예고 후 국민의견 수렴까지는 통상 두 달여의 시간이 걸린다. 또 법령의 위헌·위법적 요소를 걸러내는 법제처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도 최소 한 달여의 시간은 필요하다.
복지부는 지난 3월 “자체 법령 검토 과정 중 ‘조문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시행규칙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더 지났지만 여전히 PA 간호사 업무에 관한 시행규칙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간호법 시행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선 국민 의견수렴 과정이나 법제처의 법령심사 과정을 줄여야 할 상황이다.
복지부가 ‘PA 간호사 업무에 관한 시행규칙’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제도 시행의 두 주체인 PA 간호사, 의사가 모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현장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지난해 10월부터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자문단’을 운영했다. 환자단체·정부·보건의료단체·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자문단은 알려진 것만 회의를 총 8차례 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 역시 참여해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이를 근거로 지금껏 “자문단에 간호사들도 참여해 있는 만큼 제도 시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혀왔다.
현장 목소리는 달랐다. 지난 24일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성명을 내고 “간협이 당사자나 회원들 의견수렴 없이 PA(진료지원)업무 제도를 18개 세부 분야로 구분하는 의견을 (정부에)제시했다”며 “해당 사안에 대해 자체 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 1062명 중 76%가 해당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일하는 한 PA 간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복지부든 간협이든 지금껏 PA 간호사 제도에 관해 의견을 묻거나 논의 내용을 공유한 바가 없다”며 “현장 의견은 듣지 않고 법을 만들어 놓고 뒤늦게 논란이 될 것 같으니 공개를 미루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사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김충기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제도를 시행하려면 정책에 대한 우려 사항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논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기본인데 PA 간호사 제도에선 이러한 구조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 의협이 논의에 참여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 몇 가지를 지적했더니 이조차도 정부가 제대로 설명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렇게 될 것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쟁점 사안들을 해결하기 어려우니 적극적으로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간호법 시행 일정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시행규칙은 시행일인 6월 21일 전에 마련돼야 한다. 복지부가 통상적인 수준으로 국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면 법제처가 법령심사를 할 수 있는 기한은 10여 일 안팎이 될 전망이다.
법제처는 복지부가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하면 법 시행에 맞출 수 있게 노력하겠지만 현 상황에선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로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체 지난 9개월 동안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시행규칙을 보완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시간이 없다며 정부 구상대로 처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