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철학] 풀을 이기는 법(1)

2024-10-17

가을이 깊었습니다. 가을은 이슬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별빛 스러지는 푸르스름한 새벽에 나서면 밤사이 비라도 내린 것처럼 온 들이 축축이 젖었고, 농막 추녀에서는 낙숫물까지 똑똑 떨어집니다. 이 차갑디차가운 이슬이야말로 풀이 풀처럼 살아가게 하는 생명수나 다름없습니다. 풀은 식물 세계의 유목민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주 느리지만. 이슬을 동력원으로 삼아 헐빈한 채비만으로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닙니다.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되어 감히 농산물이 범접하기 어려운 기동성과 강한 생존능력을 지닌 것입니다.

김매기

농민에게 김매기는 일상입니다. 김매기 또는 제초는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잡초를 없애거나 잡초의 발생을 억제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농민의 욕심으로만 재면 아주 말살하고 싶은 게 풀입니다만, 땅이 아예 죽어버리지 않는 한 풀은 ‘근절’되지 않습니다. 아니, 땅이 기어이 망가지면 풀도 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낫겠습니다. 풀이 살아 있는 한 농사지을 희망이 있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농사가 없었으면 김매기도 없었겠으니, 풀은 농업의 시작에서부터 관리 대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호미가 유서 깊은 풀과의 다툼의 유물이자 현존하는 증거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유려하기도 어려운 자태를 뽐내는 호미의 곡선미는 고대인이 미리 알았던 인체공학의 산물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농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속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버금가는 격언이 또 있습니다. ‘호미 끝에 백 가지 곡식이 열린다.’(농사직설) 이는 다시 말해 풀 관리를 잘해야 풍작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초제, 그 후일담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화학 제초제는 풀을 관리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작금에 와서는 전문가들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초제는 특정 잡초만 선택적으로 제거하여 잡초 생태계를 단순화합니다. 이는 농업 생태계의 건강성을 해치고 예기치 않은 해충 발생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잡초의 다양성 감소). 그리고 제초제의 반복 사용은 잡초의 저항성을 키워 더 강한 제초제를 써야 방제가 되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제초제 저항성). 토양, 수질,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되어 생태계와 우리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환경 오염). 제초제는 잡초뿐만 아니라 유익한 곤충, 미생물 등에도 영향을 미쳐 농업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생태계 교란). 토양 미생물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토양이 나빠져 농업 생산성을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토양 건강 악화).

제초제는 한마디로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는 잡초 관리 수단인 셈입니다.

풀, 관리의 시작

잡초의 눈에 띄는 특성은 땅속에서 발아하지 않는 상태로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잡초 종자의 휴면성이 다양하고 복잡하여 발아할 수 있는 기간이 깁니다. 종자 생산량이 많고 이동이 쉬우며 개화도 무척 빠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작물은 풀의 기동성을 이겨낼 재간이 없으므로 경합에서 번번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우리나라 잡초의 발생 특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잡초는 바랭이, 쇠비름, 깨풀, 흰명아주, 돌피 순이라고 합니다. 우리 부부의 덤바우는 바랭이가 으뜸이고, 일부 밭에는 쇠뜨기가 만연하는 형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밭을 우점하고 있는 잡초들을 알아두는 것은 무척 중요한 선수 조건입니다. 잡초는 그 종에 따라 저마다의 발아 시기가 있고 고유한 특성이 있어서 그에 반하는 예방조치를 취함으로써 제압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획일화된 잡초 관리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과 물리적 변화는 복합적입니다.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잡초 관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잡초 관리의 방법은 농생태학의 통합 잡초 관리(Integrated Weed Manag ement, IWM) 지침에 따르면, 큰 틀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예방: 토양 종자 저장고-seed bank 관리, 작물 경쟁력 향상, 파종, 정식 전 잡초 발아 유도 및 제거(가묘상), 피복 작물 재배(헤어리베치, 호밀 등), 경운 시기 조절,

직접 방제: 기계적(호미, 예초기), 물리적(멀칭, 태양열 소독), 생물학적(천적, 미생물 제초제), 화학적 방법(제초제), 무경운 또는 최소 경운 재배(토양 교란 최소화, 잡초 발생 억제)

예방

이론적으로 외부에서 유입되는 잡초 종자를 차단하는 것이 잡초 예방의 첫걸음입니다. 잡초 종자가 끼어 있지 않은, 깨끗한 농기계와 종자를 사용하고 외부 토양의 유입을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숙성된 퇴비를 사용하여 잡초 틈입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도 유의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밭을 무슨 검역소처럼 운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만, 이 사항들을 알고 있는 것은 잡초 전파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잡초는 토양 환경에 따라 발생량이 달라집니다.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고 건강한 토양 생태계를 조성하면 잡초 발생이 억제됩니다. 또, 똑같은 작물을 연속해서 재배하면 특정 잡초가 번성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작물을 돌려짓기하면 특정 잡초의 발생을 억제하고 토양 건강도 증진할 수 있습니다. 잡초와의 경쟁력이 강한 작물 품종을 선택하면 잡초 발생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생장 속도가 빠르고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작물은 잡초를 빛으로부터 차단하여 생육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휴지기에 호밀, 헤어리베치 등 피복 작물을 재배하면 잡초 발생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피복 작물은 토양을 덮어 잡초 종자의 발아를 막을 수 있습니다. 땅을 갈아엎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면 잡초 종자의 발아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잡초 종자는 햇빛을 받아야 발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경운 재배는 잡초 종자를 땅속에 묻어두어 발아를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잡초 예방 방법은 경지의 운용에 따라서는 활용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이 겨냥하는 목표에 대해 이해한다면, 부분적인 응용이 가능합니다. 텃밭 수준의 경지라면 위의 방식들이 더할 나위 없는 잡초 해결책이 되겠습니다.

기계적 잡초 관리

농기구 또는 기계를 사용하여 잡초를 제거하거나 생육을 억제하는 방법을 기계적 방법이라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잡초 관리 방식입니다. 토양을 과도하게 교란하지 않아 토양 미생물의 활동을 촉진하고 토양도 건강해집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농민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작업이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잡초의 종류와 생육 단계에 따라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기계적 잡초 관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밭을 갈아 풀의 발아를 촉진한 다음 잡초가 어릴 때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잡초 발생 상황에 따라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피복 작물 재배, 돌려짓기(윤작), 잡초 경쟁력 약화 작물 선택 등 다른 잡초 관리 방법과 병행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잡초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이근우 시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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