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계 안쪽, 인사이더들의 시각으로만 보면 독립영화 ‘THE자연인’은 꼭 봐야 할 작품에 속한다. 데뷔작 ‘낮술’(2009)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감독 노영석의 신작인데다 이 영화의 배급을 독립영화 제작의 베테랑인 조영각 프로듀서가 맡았고 극 중 주연급인 자연인 역을 맡은 신운섭은 유명 노동영화인 ‘휴가’(2021)를 만든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휴가’의 감독 이란희도 주요 배역, ‘소복 여인’으로 나오기도 한다. 신운섭과 이란희는 영화인 부부 사이이고 둘은 최근 ‘3학년 2학기’를 만들고 개봉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영화 ‘THE자연인’은 따라서, 일종의 인디계의 가족 시네마인 셈이다. 대중 관객들에겐 이런 배경 설명이 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관이 없는 얘기이다. 영화가 재미가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있는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독립영화 ‘THE자연인’에 대한 호오를 구분 짓는 가르마가 될 것이다.

영화는 귀식커(鬼seeker)라는 유튜버 인공(변재신)이 10만 구독자 문턱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한 남자의 제보를 받고는 친구이자 또 다른 댄서 유튜버인 병진(정용훈)과 함께 그가 산다는 산골을 찾아가 일종의 자연인 촬영(방송프로그램 ‘자연인’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콘텐츠 중의 하나이다)을 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이 자연인(신운섭)은 만날 때부터 둘을 기겁하게 만드는데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고 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밥은 소금(과 같은 잼)으로만 먹고 그것도 그냥 손으로 먹는다. 휴지도 없어서 화장실을 가게 되면 저 아래 냇가에서 이른바 ‘자연 비데’로 해결하라는 식이다. 자연인은 말한다. “냇물에 미네랄이 많아서 치질이 싹 나아, 좋아!” 영화 ‘THE자연인’은 이런 식이다. 슬슬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유머긴 유머인데 그 넓이와 깊이가 다르다. 일부 젊은 세대들이 좋아한다는 엇박자 유머이다. 극장 안에서 몇몇이 낄낄거릴 수는 있어도 관객 전체가 박장대소를 할 유머는 아니다. 병진이 소복 여자(이란희)에게 왜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냐고 물어보면 “그럼 발가벗고 다녀요?”라는 식이다. 이 영화 유머의 콘셉트는 짜증 유발이다.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다. 그냥 ‘썩소(썩은 미소, 쓴웃음)’ 유발 유머이다.

주인공 인공은 시작부터 의심하기 시작한다. 첫날 밤 그는 목이 말라 마당에 나갔다가 자연인이 자기 방에서 배달된 짜장면과 군만두를 먹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연인은 (연습을 많이 한 듯) 여자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집에는 볼링공도 있고 산속에는 여자 마네킹도 있다. 스킨로션을 바르고 치킨(옛날 통닭)을 먹기도 하며 방안 장롱에는 오래된 산삼주가 가득하다. 뭔가 이상하다. 주인공 인공은 자신의 프로그램을 ‘인공’적이지 않게 날 것 그대로, 내추럴하게 찍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이 모든 게 다 연출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연인은 정말 자연인인가, 아니면 무엇(돈이나 이름)인가를 노리고 자연인 흉내를 내는 사기꾼인가. 자연인은 중간중간 빙의가 왔다며 이상행동을 한다. 그것 역시 인공의 눈에는 살짝 연기를 하는 것으로 비친다. 인공은 계속해서 자연인을 의심하고 친구 병진은 반대로 점점 그에게 빠져든다. 영화는 자연다큐 같은 분위기로 시작해 코미디로 갔다가 미스터리 스릴러로 옮아간다. 나중에는 일종의 추적 스릴러까지로 변신한다. 과연 자연인의 정체는 밝혀질 것인가. 그 비밀은 무엇인가. 영화는 엄청난 재미까지는 주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집중하게 만든다. 적어도 결말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런 면에서 노영석의 연출 의도는 어느 정도 먹힌 셈이 된다.

영화 ‘THE자연인’이 관심을 모았던 데는 이 작품이 원 맨 시네마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노영석은 이 영화에서 각본과 감독을 맡은 것은 물론이고 프로듀서, 촬영, 조명, 음악, 미술, 동시녹음, 의상, 편집, 컴퓨터 그래픽, 디지털 색 보정, 사운드 믹싱까지 제작의 전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퍼스널 시네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독 노영석이 노렸던 것은 영화의 재미도 의미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형식의 실험이다. 이런 방식으로도 영화를 완성할 수 있다,에 대한 선언이자 도전으로 보인다. 영화가 그다지 촘촘한 에피소드로 채워지지도 않으면서 굳이 러닝타임 2시간을 꽉 채운 것은(124분) 혼자서도 장편 규격을 완성할 수 있음을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노영석은 이렇게 묻고 있다. 영화는 꼭 많은 인원이 동원돼야 하는가. 영화는 꼭 자본이 필요한가. 영화는 꼭 이야기가 필요한가. 영화는 형식의 예술인가, 내용의 예술인가. 노영석의 질문은 현대영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식과 다른 문을 열고 새로운 길을 가 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THE자연인’은 1인 미디어 제작자들, 곧 유튜버들의 얘기인 만큼 영화도 1인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유튜버들이 만들어 내는 폐해들, 예컨대 자연인이라지만 많은 부분이 연출되거나 가짜로 만들어지는 듯한 위선과 거짓에 대해서도(심지어 모든 것이 몰카였다는) 일침을 가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주인공 인공과 병진은 오로지 구독자 수에만 열광한다. 어쩔 수 없는 ‘관종(관심 종자, 관심을 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행태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 병처럼 만연해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원 맨 시네마는 그간 여기저기서 시도는 되어 왔지만, 이번 노영석의 작품만큼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할리우드의 유명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초기작 ‘엘 마리아치’(1992)에서 각본과 감독 촬영 편집을 담당하며 깃발을 세웠다. 당연히 초저예산 영화였다. 단돈 7천 달러(약 1천만 원)를 썼으며 2백만 달러(약 28억)를 넘게 벌었다. 그래서 유명해졌고 그래서 원 맨 시네마가 유용하다는 인식을 줬다. 국내에서 원 맨 시네마 방식을 추구했던 인물은 사망한 감독 김기덕이다. 김기덕은 불명예스러운 일로 모든 작품이 거의 묻혀 버렸지만, 그가 2000년에 만든 ‘실제상황’은 한국에 최초로 등장한 원 맨 시네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THE자연인’처럼 온전한 형태의 원 맨 시네마의 출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시네마 예술의 향방을 가늠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하게 한다. 그럼에도 원 맨 시네마로 만들어지는 작품들 역시 서사가 좋아야 하고, 대중적 재미도 있어야 하며, 주제 역시 뚜렷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과연 원 맨 시네마가 거기까지 나아 갈 수 있을까. 상업영화가 지닌 자기 목적성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을까. 대중을 만족시키고 공감케 하는 영화의 기본기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영화 ‘THE자연인’은 그 질문의 출발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혼자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혼자 만든 영화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그게 쉬운 얘기는 아니다. 노영석은 이번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노력을 치하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