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분자의 모양을 알 수 있는 이유

2024-09-29

세상의 모든 물질이 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 분자는 원자들이 모여서 형성되고, 원자는 소립자들이 모인 것이라고 자신 있게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가 뭘 직접 알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 배웠을 뿐이다. 결국은 그렇게 얘기하는 과학자들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원자나 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알까. 전문가라고 해서 그런 입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최고 성능을 가진 전자현미경을 들이댄다고 해도 물 분자가 산소 원자 하나랑 수소원자 두 개로 만들어졌다거나, 벤젠의 6각형 분자 모양이 그냥 환히 보이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 개발된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을 사용하면 원자 하나하나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원자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형성된 고체 상태의 물질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관측 기술이 개발되기 100년 전에 이미 화학자들은 분자구조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원자·분자, 상식으로 여기지만

실제 구조는 직접 관측 힘들어

프랑스 왕실 무도회 사고 계기로

원자론 및 분자구조 이론 발전

오랫동안 고심하며 여러 방향에서 연구한 결과를 집대성해 거대한 퍼즐을 풀어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퍼즐을 풀도록 해 준 단서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모두 간접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광선이 용액이나 결정을 통과할 때 그 분자 구조에 따라서 다르게 회절된다. 그런 식의 간접적 관측방법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중 처음 개발되었던 것은 치환(substitution)반응이다. 분자 속에 있는 한 가지 원자를 다른 종류의 원자로 교환하는 것인데, 일반인들에게는 아마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염산 가스’ 뿜어낸 무도회 샹들리에

치환 반응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은 1820년대에 프랑스 왕 샤를 10세가 그 당시 파리 시내에 있었던 튀일리 궁전에서 주최하였던 한 무도회였다. 그 행사에 참석했던 귀빈들은 샹들리에에서 뿜어 나오는 정체불명의 유독성 연기를 맡고 질겁하여 도망쳤다. 이 사건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은 저명한 화학자 장 바티스트 뒤마는 그 독가스가 염산 가스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샹들리에에서 염산이 나오다니? 그 당시 샹들리에라 칭한 것은 요즈음 생각하는 전등불이 아니라, 양초를 둥근 틀에 층층이 꽂아서 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사용되었던 초들은 염소(鹽素, chlorine)를 포함한 표백제를 써서 우아한 하얀 색이 나도록 만들어 놓은 제품이었다. 그 표백 과정에서 초의 원료인 동물성 기름에 들어있는 수소의 일부가 표백제에 들어 있는 염소로 대체되었으며, 그것이 연소하면서 염산 가스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뒤마는 추론하였다. 그 해석이 일리는 있어 보였지만 많은 화학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수소와 염소는 속성들이 전혀 다른 물질이다. 그 당시 정설로 간주되었던 전기화학적 이론에 의하면 수소는 강한 양성을 띠었고 염소는 가장 음성을 띤 원소였다. 그런데 어떻게 염소가 수소의 자리를 차지한 화합물이 형성될 수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여 연구를 시작한 뒤마는 1834년에 수소-염소 치환에 관한 경험적 법칙들을 발표했다. 또한 과거의 다른 실험들이 수소-산소 치환의 사례들이었음을 돌이켜보며 깨달았다. 그런 실험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염소가 시안화수소(HCN)에 가하는 작용에 관한 게이-뤼삭의 1815년 연구였다. 그 작용을 통해 시안화수소는 염화시안(CNCl)으로 둔갑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정한 부피의 염소가스가 흡수되고 정확히 같은 부피의 수소 가스가 나왔다. 그렇다면 분자 구조를 생각할 때 수소 원자 하나를 염소 원자 하나와 맞바꾸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단서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과학

또 더 재미있는 것은, 메탄가스는 염소가스와 그런 식의 반응을 네 번이나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메탄분자에는 수소 원자가 네 개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추론으로 시작하여 결국 밝혀낸 메탄의 분자식은 CH4, 즉 탄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네 개가 결합한 것이었다. 거기서 수소 하나를 염소로 대체하면 소위 클로로메탄(CH3CI)이 되고, 네 개 다 대체하면 테트라클로로메탄(CCl4)이 된다. 이 물질은 드라이클리닝에도 사용되는 등 여러 가지 용도가 있다. 이러한 연구들을 하다 보니 탄소 원자는 수소가 되었건 염소가 되었건 다른 원자를 네 개 잡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탄소의 원자가(valence·한 원자가 다른 원자와 결합하는 수)가 4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원자가의 개념은 19세기 중반부터 꽃피게 된 유기화학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왕과 귀족들이 놀다가 봉변을 당했던 이상한 사고가 첨단 화학의 커다란 연구 프로그램을 유발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연구가 진전되어 복잡한 화학물질들의 분자식을 밝혀내고, 직접 보이지 않는 분자 구조를 어둠 속에서 문고리 잡듯이 차차 알아내게 되었다. 물론 치환 반응이 준 것은 한 가지 단서이었을 뿐이고, 수많은 다른 단서를 여기저기서 잡아서 그에 기반하여 추론하고 여러 가지 방향의 연구 결과를 모아서 우리가 이제 철석같이 믿게 된 원자론과 분자구조 이론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과학의 발견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길에 흘린 물건을 줍는 식으로 어설프게 얻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주어진 실마리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결국은 무언가를 밝혀내는 힘겹고도 신나는 과정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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