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천재들

2025-03-11

때로 어떤 취재 경험은 너무나 선명하다. 그중 하나가 10년 전인 2015년 1월 중국 베이징대 출장이었다. 우중충한 회색 벽돌 건물, 깨진 유리창, 낡은 복도, 한눈에 봐도 구형 컴퓨터…. 명문대에 기대한 첫인상은 실망이었다. 공대 연구실에 들어섰다. 먼지 쌓인 구석 수조에 노란색 ‘로봇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반전은 다음부터다. 자세히 살펴보니 물고기 꼬리 움직임이 놀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대학원생은 “고성능 수중 카메라만 달면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미국에서 2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22억원) 이상 투자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비결은 단순했다. 대륙의 천재들의 ‘노오력’. 대학원생 면면부터 화려했다. 중국 광둥성(2014년 기준 인구 1억800만 명), 쓰촨성(8100만 명) 등에서 대학 입시 1~5등을 차지한 인재라고 소개했다. 확률로만 따졌을 때 대한민국 수능 수석보다 나은 천재들이다.

하루 몇 시간씩 연구하느냐고 물었다. “15시간쯤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천재끼리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뺀 대부분을 연구에 매달린다는 얘기다. 우연히 들른 연구실이 그렇다면, 대체 중국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당시 경험이 떠오른 건 연초부터 인공지능(AI) 업계를 흔든 중국발 ‘딥시크(DeepSeek) 쇼크’를 취재하면서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梁文鋒·40)은 2002년 중국 대학 입시 수석(저장대) 출신이다. 량원펑 같은 대륙의 천재 수천수만 명이 하루 15시간, 어쩌면 그 이상 AI에 매달리는데 한국이 경쟁에서 이기기 바란다면 욕심이다.

감탄은 여기까지만. “중국에 한참 뒤진 AI 판세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우울한 결말은 아니다. 모든 문제가 인구 때문이라면 저출산·고령화 롤러코스터를 탄 우리는 항상 질 운명이다. 하지만 인구가 곧 승패는 아니잖나. 축구 인구만 따지면 한국은 중국에 비교 불가할 정도로 적다. 그런데도 중국은 국가대표 A매치 경기마다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린다.

영일만 허허벌판에 제철소를 세우고(포스코), 조선소도 없는데 배를 수주하고(HD현대중공업), 모두가 뜯어말린 반도체 사업에 도전해 성공한(삼성전자) 나라가 한국이다. 길이 막히면 새로 냈고, 답이 없으면 문제를 뒤집었다. 한국의 맨 파워가 중국에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뛰어난 인재가 의대·로스쿨에 몰리는 현실이 찜찜하다. ‘K량원펑’이 눈을 번뜩이는 대학 연구실, 한국판 딥시크는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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