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로 그 어느 해보다 힘든 새해를 맞았다. 사람들 마음속에 깊은 분노와 슬픔이 함께 흐르는 가운데 사회 전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흔들리는 코끼리에 올라탄 ‘임시 기수’들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선출된 권력이 아닌 탓에 사사건건 정치권의 겁박이 이어지고 정부 내부에서조차 총질이 난무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의 혼란으로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까 걱정스럽다.
시계를 지난해 12월 23일로 돌려보자. 비상계엄 선포의 충격적인 내막이 조금씩 드러나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후폭풍이 온 나라를 휩쓸 때다. 모든 관심이 여기에 쏠리면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뉴스가 있다. 우리나라의 초고령사회 진입 소식이 그것. 초고령사회는 65세가 넘는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초과하는 국가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24만 4550명으로 전체 인구(5122만 1286명)의 20%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저출산 여파로 당초 예상보다 1년 일찍 찾아왔다.
예고된 일이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로 예상되는 저성장 시대이기 때문이다. 노인 증가는 가뜩이나 힘든 내수 경기에 큰 짐이 될 뿐 아니라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은퇴할 경우 2024~2034년 연간 경제성장률이 0.2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령사회가 우리 경제에 가장 직접적으로 끼치는 부담은 의료비다. ‘202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노인 진료비는 1년 전보다 7% 가까이 늘어 50조 원(48조 9011억 원)에 육박했고 전체 진료비의 44%에 달했다. 건강보험이 의료기관에 지불한 진료비와 환자가 의료기관에 지불한 본인부담금을 합한 것으로 그나마 비급여 진료비는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2023년 18% 정도였던 노인인구 비중이 이제는 20%를 넘었고 비급여 진료비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현재와 앞으로의 노인 의료비 부담은 이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또 다른 걱정은 노인 빈곤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70%에 불과하다. 개인이 준비하는 퇴직연금의 최근 5년 수익률은 연 2.35%, 10년 수익률은 연 2.07%로 물가 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노인들이 모아둔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인 점은 또 다른 함정이다. 국내 고령층의 자산은 부동산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허접한 공적·퇴직연금과 부동산에 집중된 자산 구조로는 노후를 위한 현금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주들이 생각하는 은퇴 후 ‘적정 생활비’는 월평균 336만 원, ‘최소 생활비’는 240만 원으로 나타났다. 또 은퇴한 가구주 57%는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는 일을 더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수월하지 않다. 국민연금 지급 시기가 65세로 늦춰져 최소 5년의 소득 크레바스가 생기는 상황에서 노동 기간 연장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년 연장을 포함해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논의는 이런저런 이유로 더디기만 하다. 결국 노인들은 저임금의 단순 노무로 내몰린다.
초고령사회가 불러올 각종 부작용들은 이 정부가 추진했던 4대 개혁(의료·연금·노동·교육)과 맞닿아 있다. 4대 개혁 어젠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컸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 과제에서는 진전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불통·독선·무능 탓에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했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역대급 헛발질로 4대 개혁을 걷어차 버렸다. 4대 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얻은 선출직 공무원이 관료들과 치열하게 고민해 방안을 만들고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설득과 합의에 전력을 다해야만 한 걸음이라도 전진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혼돈을 마무리하고 진짜 국민의 삶을 위한 ‘숙제’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망상에 사로잡혀 직무 정지된 대통령의 ‘버티기’에 골든타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