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5월 서울대에서 ‘고운 이름 뽑기’ 대회가 열렸다. 자녀가 한자 말고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가정들이 출전해 경합을 벌였다. 영예의 금상은 충남 천안에 사는 김모씨 가족한테 돌아갔다. 김씨 부부는 남매에게 ‘초슬’ ‘이슬’ ‘귀슬’ ‘한슬’ 같은 예쁜 이름을 지어준 점이 후한 평가를 받았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남의 조롱을 무릅쓰고 순교자 같은 의지로 한글 이름을 지어준 부모들을 격려하는” 것이 행사 목표였다고 한다. 한자 이름이 대세이던 시절 순우리말 이름 선택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솔직히 1960년대까지는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97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순우리말 이름 사용이 늘기 시작해 1980년대가 되면 적어도 ‘희한하다’거나 ‘낯설다’는 얘기는 듣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다. 2000년대 이후로 순우리말 이름은 점점 증가하는 모양새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아기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예쁜 이름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넘쳐난다. 심지어 순우리말 이름만 전문적으로 지어준다는 작명원(作名院)까지 출현해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국어학자들은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한국인들 거의 대부분이 순우리말 이름을 썼을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 한자가 전해진 뒤로 소수 귀족이 성과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했으나, 일반 백성의 경우 성은 생략한 채 이름만 순우리말로 지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고려 왕조가 출범하며 비로소 중국의 문자와 문화를 제대로 수입했고, 그때부터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자어 작명이 본격화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오늘날 순우리말 이름이 누리는 인기에는 그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재명정부가 26일 발표한 인사 명단 중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 이름을 접하고 ‘오타인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 이가 많다. 어느 일간지에 실린 1996년 제40회 행정고시 합격자 명단에 이 차관의 이름만 한자 대신 한글로 적힌 것을 보니 순우리말 이름인 듯하다. 역대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가운데 순우리말 이름을 쓴 인물이 있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 차관이 1972년생인 것을 보면 순우리말 이름 사용이 늘기 시작하던 초창기다. 앞으로 순우리말 이름을 지닌 고위직 인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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