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민단체의 20년

2025-06-15

지난주 금요일, 한 자그만 시민단체가 서울 종로의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설립 2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시민단체가 20년을 버텨왔다면 아마도 거기에는 공익에 뜻을 둔 사회적 명망가가 설립자로 있고, 지금쯤이면 조직 규모나 예산도 안정적일 것이라 상상할지 모른다. 이 단체의 상근자는 20년 전에도 지금도 다섯 명이다. 창 없는 좁은 사무실 공간을, 자신들과 유사한 작은 단체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 단체를 시작한 것은 뜻있는 명망가가 아니라 목격자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일반 시민들에게는 봉사활동과 크리스마스 때 후원 물품 전달 대상 정도로 인식되던,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장애인 장기 거주 시설의 물리적 열악함과 비인간적 관리 실태를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황했고 분노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저 시설에서 만난 장애인들-학자들이 ‘정책대상 집단’이라고 부르듯 정책이 원하는 것을 원해야 했던 말 없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물어봤을 뿐이다. 20년이 흐른 오늘날, 이들이 만들어낸 정책의 물줄기를 우리는 지금 ‘탈시설 지원정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럼 이 목격자들이 이 정책의 발원지인가. 아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20년 전 어느 날, 이 목격자들이 만났던 장애인 중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를 여기서 꺼내달라. 나는 나가고 싶다. 너희가 말을 했으니 나를 책임져라.” 목격자들은 이 절실하고 당당한 주권적 명령에 따랐다. 시설이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라 생각하던 한 중년의 여성 장애인은 그렇게 정책의 진정한 발원지가 됐다.

무엇이 사회 문제인지를 정의하고, 그 해법을 찾아내고, 정치적 협상을 이끌어내 비로소 정책 결정에 이르게 하는 주도적 행위자를 정책 선도자라고 부른다. 대부분 대통령, 정치인, 법안 입안자 등 눈에 잘 띄고 공식적으로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탈시설 정책의 선도자는 누구일까. 현재 집행되고 있는 탈시설 로드맵 20년을 발표한 정부의 대통령일까? 탈시설 지원 조례 제정에 앞장섰던 정치인일까? 역사는 그렇게 기록할지 모르지만, 탈시설 정책의 선도자는 “나는 이 시설을 나가고 싶다”고 처음 말한 장애인들이다. 탈시설 정책은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그것을 강요할 수 없고, 목격자 외에는 누구도 그것에 관심 없었던 시대에, 그것을 선택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시작될 수 있었다. 활동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나를 내보내달라고 당당하게 말한 순간, 그 발화는 제도적 입법에 앞서 사회적 입법이 됐다.

지금이야 지원주택이나 활동지원 같은 제도가 있지만 당시는 아무런 정부 지원이 없었다. 목격자들은 저 사회적 입법의 집행자가 되어 시설에서 나온 이들과 함께 먹고 잤다. 이 정책 집행자들은 흥미롭게도 다섯 명의 젊은 비장애 여성이었다. 장애인 권익 운동의 현장에서 주인공이라 하기 어려운 비장애인이자, 사회 전반의 성차별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었던 20년 전 여성, 그리고 지금도 목소리 내기 어려운 청년이라는 세 가지 취약성이 중첩된 사람들이었다.

지난 20년은 대한민국의 전성기라고들 한다. 정권은 민주적 방식에 의해 주기적으로 바뀌었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국제 통계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나라가 됐다. 그런 역사적 흐름 가운데 이 단체의 20년에는, 많은 장애인이 국가의 선의와 통제가 뒤섞인 정책하에 좁고 눅눅하고 폐쇄되고 폭력적인 공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 절망하며 살아가야 했던 시대에서, 그래도 일부 장애인은 여전히 좁지만 그리 눅눅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대로의 변화가 기록돼 있다. 그사이 활동지원 제도가 시행됐고, 지원주택이 들어섰다.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들이 생겨났고, 사회 전반의 장애 인식도 조금씩 좋아졌다.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초원의 웅덩이에 작은 생태계가 조성되듯이 탈시설 생태계가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져왔다.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도 작은 샘에서 발원한다. 정책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적 활동이라면, 탈시설 정책은 정부나 국회가 아니라 숨겨진 샘 같은 당사자와 목격자들로부터 시작됐다. 당사자가 목격자를 만들고, 그 목격자가 당사자가 되어, 먼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했다. 스스로 ‘발바닥’이라 부르는 이들은 부족한 자원과 지지 속에서 오늘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인권사를 써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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