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덮은 ‘무지갯빛 사랑’···“결코 멈추지 않는다”

2025-06-14

1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근.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행진하자 일부 보수 기독교 신자들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섞인 말과 함께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다. 참가자들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그들을 지나쳤다.

이내 ‘무지갯빛 사랑’이 혐오를 덮었다. 노란 도화지에 손글씨로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길가에서 “사랑한다”고 외치는 참가자가 나왔다. 참가자들은 환호했다. 팻말을 들고 있던 이정민씨(24)는 “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라며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로·우정국로 일대에서 제26회 서울퀴어퍼레이드(퀴퍼)가 열렸다. 올해 슬로건은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단순한 선언이 아닌 우리가 살아낸 지난 25년의 역사이며, 함께 나아갈 다음 25년의 약속”이라며 “더 많은 사랑을 위해, 더 넓은 연대를 위해 다시 우리의 축제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축제는 오전 11시 서울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 앞 입구 근처에서 ‘무지개 너머 무지개 축복식’으로 시작됐다. 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원장 사제 자캐오 신부, 이동환 목사를 비롯해 목회자 약 40명이 참여했다. 목회자들은 “나와 너, 세상의 아픈 자리 가운데 위로와 연대를 전하는 무지개빗 사람들을 축복한다”고 말하며 참가자들을 향해 ‘축복의 꽃잎’을 뿌렸다.

축제에는 ‘퀴퍼 1년차’부터 ‘N년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유아차를 탄 아이, 남편과 함께 참여한 박수지씨(36)는 “퀴어에 열려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서 아이가 태어나고는 처음 함께 왔다”며 “서울시청 광장에서 집회가 열릴 때보다 ‘혐오 세력’의 목소리가 작아져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손성호씨(45)는 “나이가 이 정도 되니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주위 사람들한테 커밍아웃을 했는데, 대충 다 알고 있더라”라며 “이렇게 많은 사람과 행진할 수 있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퀴퍼 참석을 위해 직접 소품을 제작한 이들도 있었다. 직접 의상을 수선해서 만들어 입고 온 탕후루(20·활동명)는 “올해는 파격적인 옷을 입어보고 싶어서 조금 찢어봤다”며 “성소수자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소속감을 느낄 기회가 많이 없다 보니, 우리가 연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소수자연대 풍물패 장풍 소속 채미(26·활동명)는 “오색 무지갯빛의 상모 꽃과 어깨끈을 제작해 ‘길놀이(이동하면서 사물놀이를 하는 것)’로 연대하려고 매주 월요일마다 2시간씩 한 달 넘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이번 퀴퍼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 열리는 서울 퀴퍼이기도 했다. 애인과 함께 퀴퍼에 온 이준희씨(22)는 “지난 탄핵 집회 과정에서 많은 무지개 깃발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집회 발언자 중에도 퀴어들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살다가 2018년부터 한국에 산 덩컨 솔레어는 “비상계엄 때는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 했다”며 “미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우익’ 세력이 부상하고 ‘동성애 혐오’가 늘어가는 와중에, 한국 선거에서는 우익이 졌다는 게 의미가 큰 것 같다. ‘최종적 승리’는 아니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축제장 입구인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 맞은편에는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그러자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찬송가에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던 박주혜씨(19)는 “우리를 다 사랑하신다고 하니, 나도 사랑한다고 하고 있었다”며 “더운 날 고생 많으시다”고 말한 뒤 다시 춤을 췄다.

축제에는 이날 오후 6시 현재 연인원 17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지하철 종각역 5번 출구에서 출발해 종로2가, 을지로 2가, 명동성당, 명동역, 서울광장을 거쳐 다시 지하철 을지로입구역까지 행진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