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차기 대권 도전 선언한 옛 측근과 ‘어색한 만남’

2024-09-14

2017∼2020년 총리 지낸 에두아르 필리프

최근 마크롱 조기 퇴진 가능성 의식한 듯

“대선 출마할 것” 발표… 정가에서 화제 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와 공개 석상에서 함께해 눈길을 끈다. 마크롱 밑에서 총리를 지낸 필리프는 마크롱의 임기가 아직 3년 가까이 남은 상태에서 다음 대통령에 도전할 뜻을 밝혀 프랑스 정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3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마크롱과 필리프는 전날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르아브르에서 열린 해방 80주년 기념식에 나란히 참석했다. 필리프는 현재 르아브르 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나치 독일에 항복하면서 르아브르도 오랫동안 독일군의 점령 통치를 받았다. 1944년 6월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르아브르는 여전히 독일군의 수중에 있었다. 1944년 9월12일에야 연합군은 르아브르에서 독일군을 내몰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미·영 공군의 무지막지한 공습으로 수많은 프랑스 민간인이 사망하고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1944년 8월25일 파리 해방이 축제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면 그로부터 약 20일 뒤의 르아브르 해방은 비통함 그 자체였다. 마크롱도 기념 연설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르아브르가 입은 상처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며 “나치로부터 프랑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르아브르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희생을 치렀다”고 말했다.

필리프는 르아브르 해방 기념식에 마크롱이 직접 참석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엘리제궁에 따르면 기쁨보다 슬픔이 더 컸던 르아브르 해방을 기념하는 의식이 대통령의 주관 아래 국가적 행사로 치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언론의 관심은 기념식 자체보다는 마크롱과 최근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필리프의 만남에 쏠렸다. 마크롱 밑에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리를 지낸 필리프는 우파 진영에서 마크롱을 지지해 온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2027년 5월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아직 3년 가까이 남은 상태에서 불쑥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마크롱은 측근에게 “깜짝 놀랐다”며 실망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총선에서 마크롱의 집권 중도당은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에 패하며 원내 2당으로 주저앉았다. 여소야대 국면이 되면서 마크롱은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여당이 아닌 우파 공화당 소속 미셸 바르니에를 새 총리로 임명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도록 했으나, 원내 1당인 NFP은 “대통령이 총선 민심과 의회 다수당을 무시한다”며 마크롱 탄핵소추도 불사할 뜻을 밝혔다.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마크롱이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다며 조기에 사퇴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필리프가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마크롱이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임기 만료 전에 물러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크롱 입장에선 대단히 불쾌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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