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의 3조 6000억 원 규모 초대형 유상증자 추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시장 곳곳에서는 “주가가 1년 새 3~4배 오른 시점에 밸류업에 역행하는 행보다” “자금 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온다. 이번 유증은 주주 배정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최대주주인 ㈜한화(000880)가 얼마나 참여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편으로는 오너 3세가 지배력을 보유한 한화에너지 기업공개(IPO) 및 한화오션 지분 ‘교통정리’ 등과 맞물려 승계 작업과 연계된 이익 극대화 결정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2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이번 유증 자금으로 △MC 스마트팩토리 구축(6000억 원) △무인기 엔진 개발 및 양산 시설 구축(3000억 원) △사업장·설비 운영(3001억 원) △해외 방산 생산능력 구축(1조 원) △해외 방산 조인트벤처(JV)(6000억 원) △해외 조선 업체 지분(8000억 원)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밝힌 용처가 너무 포괄적이고 불친절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보안이 필요한 방산 중심 회사라는 점을 고려해도 한국 시장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유증을 구체적 설명도 없이 끝내려 한다는 점에서 진정성에 의구심을 보내는 것이다.
최근 2조 원의 유증 계획을 공시한 삼성SDI는 △미국 GM사 합작법인(9047억 원) △헝가리 공장(6413억 원) △국내 전고체 배터리 라인(4541억 원) 등에 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전까지 국내 최대 규모(3조 2000억 원) 유증 사례였던 202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에도 당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취득(1조 2024억 원) △4공장 건설(9000억 원) 등에 활용하겠다고 상세 공개한 바 있다.
전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관 설명회에 참석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증자 규모에 비해서 사용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며 “지분 투자를 할 대상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데 굳이 유증을 이렇게 큰 규모로 했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방산업, 해외 사업 특성상 구체적으로 투자 대상을 언급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중동과 유럽 지역에서 현지 파트너들과 얘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수준으로 해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 재무 상태가 초대형 자본 조달을 할 정도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11조 2401억 원, 영업이익 1조 7319억 원을 냈다. 향후 5개년 실적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있는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한 수주 잔액은 103조 원에 달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무보증사채 등급을 ‘A+(안정적)’로 평가한 바 있다.
황어연 노무라금융투자 연구원은 “회사의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2조 원 정도인데 이 정도면 차입을 해도 2년 뒤에 다 갚을 수 있는 금액”이라며 “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것도 아니고 주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주가가 급등한 시점에 갑작스럽게 유증을 추진한다는 점에서도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다올투자증권·DS투자증권이 목표가를 내렸고 삼성증권은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3월 20만 원 아래에서 움직였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20일 기준 75만 6000원을 기록하는 등 1년 새 3~4배 상승했다. 회사 측이 발표한 유증 가격은 60만 5000원이다. 이날 시장에서는 실망 매물이 다수 출회하며 주가가 13.02% 빠진 62만 8000원까지 떨어졌다. 한화그룹의 전체 시가총액은 70조 8735억 원으로 하루 만에 6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투자은행(IB) 업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최대주주인 ㈜한화(33.95%)가 이번 유증에 얼마나 참여하게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먼저 우리사주조합에 물량 20%를 선배정한 뒤 나머지 80%를 주주에 배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화는 9810억 원가량을 납입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한화는 지난해 말 별도 기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2298억 원에 불과하다. IB 업계 관계자는 “㈜한화가 유증에 100% 참여하려면 별도 자금 조달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3일 한화임팩트파트너스(5.0%)와 한화에너지(2.3%)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 3000억 원을 들여 매입했다. 결과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지분율은 연결 기준 34.7%에서 42.0%로 확대됐고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방산 부문 지배력이 공고해졌다. 즉 회사 현금을 투입해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높인 뒤 일반 주주들로부터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번 대규모 유증을 두고 상장사가 주가를 상승시켜야 할 이유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도 한다. 높은 시총을 달성한 기업 입장에서 사채 발행 등 차입을 통하지 않고 낮은 비율의 신주 발행만으로도 대규모 조달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이번 유증 성공 시 앞으로 약 5년간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단번에 확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