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무덤이 생겨 다행이에요"…학살 30주년, 발칸 또 불안

2025-07-08

“압둘라의 동생 맞으시지요?”

4년 전 보스니아 동부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알마사 살리호비치는 모르는 번호로 뜬 전화를 받았다.

“당신과 DNA가 일치하는 대퇴골 두 개를 찾았습니다.”

살리호비치 오빠의 유골이었다.

1995년 7월 11일, 당시 18살이었던 오빠 압둘라는 스레브레니차에서 세르비아계 군인들의 손에 끌려갔다. 그리고 다른 무슬림 남성들, 소년들과 함께 집단 처형당한 뒤 매장됐다.

2008년, 그리고 2021년 오빠의 유골 일부가 차례로 발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빠가 죽었다는 사실은 너무 고통스러워요. 하지만 약간의 위안이 되는 건 오빠를 추모할 무덤이라도 있다는 점이에요.”

보스니아 내전(1992~1995) 당시 벌어진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홀로코스트 이후 유엔이 유럽 최초의 ‘인종학살’로 공식 승인한 사건이다. 당시 세르비아 군인들은 유엔이 안전 지역으로 선포한 피난민 거주구역인 스레브레니차를 점령하고 약 8500명의 무슬림을 학살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레브레니차 학살 30주년을 맞아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 반도에 또다시 민족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리는 현상을 7일(현지시간) 조명했다.

보스니아 내전은 원래 함께 어울려 살던 세르비아인(정교회), 크로아티아인(가톨릭), 보스니아인(이슬람)이 민족과 종교 갈등으로 전쟁을 벌여 1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참혹한 사건이다. 이후 ‘데이턴 평화협정’에 따라 보스니아는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으로 구성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인이 주축이 된 스릅스카 공화국의 1국가 2체제를 이루고 있다.

세 민족의 균형을 통해 한동안 잠잠하던 발칸 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된 건 스릅스카 공화국에 등장한 밀로라드 도디크 때문이다. 스릅스카 공화국의 대통령인 도디크는 한 때 “신선한 숨결”(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란 찬사를 받았으나, 이후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화해 지금은 세르비아 분리 독립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됐다. 그는 지난해 유엔이 7월 11일을 스레브레니차 희생자 추모일로 지정하자 “세계가 세르비아인을 희생양 삼는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서방에서는 도디크의 최근 행보에 더욱 우려를 보인다. 지난 2월 도디크는 보스니아의 평화를 감독하는 크리스티안 슈미트 유엔 특사의 결정에 불복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정치활동 6년 금지를 선고받았으나, 오히려 스릅스카 공화국 의회는 공화국 내에서 중앙정부의 사법과 검·경의 권한 행사를 금지시키며 맞대응했다. 도디크를 체포하려던 중앙정부 경찰의 시도 역시 스릅스카 공화국 소속 경찰들에 막혀 실패했다.

도디크는 서방의 우려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며 위력을 과시하고 있고, 푸틴 대통령 역시 도디크를 거들고 있다. 사라예보 신학교 학장을 역임한 프란요 토비치 박사는 FT에 “1국가 2체제는 전쟁을 끝내는 좋은 방법이긴 했지만, 지금은 마치 두 개의 국가처럼 기능하기 때문에 좋은 상황이 아니다”며 “제2의 데이턴 협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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