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충실하게,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큰 꿈을 품고 해도 됩니다. 그건 욕먹을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요즘 스타트업 씬에서 가장 논란 많은 인물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일 거다. 첫 회사를 인텔에 매각한 후, 이를 기반으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를 차렸다. 엑셀러레이터이자 투자사로 십여 년 펀드를 운용하다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리얼월드‘를 창업했다.
이 과정에서 류 대표는 “류중희를 믿고 투자한 출자자(LP)를 배신한 것 아니냐, 퓨처플레이가 기업공개(IPO)를 할 줄 알았는데 거짓말을 했나, 로봇 관련 투자를 많이 했는데 또 로봇 회사를 차린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욕이란 것은, 그것도 많은 이들이 하는 욕이란 것은 그만큼 유명한 사람만이 먹을 수 있다. 세상이 욕하든 어떻든, 시장에선 리얼월드에 씨드 투자액으로만 210억원이란 거금을 쐈다. 앞으로의 대세 중 하나는 로봇이 될 텐데, 엄청난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회사의 선장으로 류중희가 적임자라 평가한 것이다.
류중희는 배신자일까, 아니면 인재들을 규합해 ‘피지컬 AI’라는 험악한 산을 넘을 괜찮은 리더일까. 둘 다일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류중희가 “남들이 욕을 하든 어떻든, 욕망에 충실하게 큰 꿈을 품고 나는 나아가겠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대표로 명함을 파고 하루하루 바쁘다는 류중희 대표를, 서울 강남구 선릉에 위치한 리얼월드의 회의실에서 만났다. 마주 앉자마자, 묻기도 전에, “합의이혼했는데, 이혼 자체로 도덕적 비난을 듣는 느낌”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성격답게, 최근의 비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피하지 않고 털어놨다.

류중희가 창업을 결정하기까지
류 대표가 퓨처플레이를 나와서 창업한 것에 비판 여론이 크다
너무 무책임하게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주주랑 합의를 보지 못했다면, 내가 회사에서 못 나오는 거 아닌가? 사인 간의 계약을 합의 하에 끝낸 것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게 말이 되는가 싶다. 마치 합의 이혼을 했는데 이혼 자체로 도덕적 비난을 듣는 느낌이다. IPO도,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고 여러 질문에 “할 수도 있다”고 했던 것이다.
동시에 류 대표가 리얼월드에 합류했고, 씨드로 210억원을 투자받았단 기사가 나가자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정말 관심이 많더라
너무 재미있는 게, 로봇 하는 스타트업이 약간은 ‘미지의 세계’라는 거다. 왜냐면, 로봇 하는 사람은 의외로 AI에 약하고, AI 하는 이들은 로봇에 약하다. 해외에서는 로봇과 AI를 결합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한국은 AI나 로봇 양측에서 ‘우리는 어떡하지?’ 걱정만 하는 회사가 굉장히 많다. 로봇은 물론이고, AI를 하는 곳으로부터도 상당히 많은 연락을 받고 있다. 이력서도 많이 오고(웃음).
대표 취임은 얼마 안 됐지만, 리얼월드가 문을 연 것이 지난해 7월이니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쉽지 않은 1년이었을 것 같은데
처음에 회사를 준비할 때는 ‘이게 되나? 이게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고민을 했다면, 지금은 ‘되는 걸 보여줘야 하는 때’다. 방향이나 무게감이 (1년 전과는) 다르다. 피지컬 AI는 아직 인류가 정답을 모르는 기술을 만드는 게임이지 않나? AI의 핵심은 데이터라는데, 로봇을 잘 훈련시키려면 데이터를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조차도 ‘골든 룰’이라는 게 없는 상황이다.
피지컬 AI를 위한 데이터 수집은 일반 거대언어모델(LLM)을 위한 데이터 수집과는 다른가?
예를 들어, LLM을 잘 만들기 위해선 데이터를 어떻게 넣으면 된다고 이미 잡혀 있는 틀이 있다. 그런데 피지컬 AI는 그런 게 당연히 없다. 무한정 시행착오를 할 순 없지 않나. 경영자로서 어떤 자원을 어디에 넣어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 안에 결과를 얻어야 한다고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지금의 나한텐 어렵고 중요하다. 지금은 사업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팔아야 하나, 여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201억원은 큰돈이가, 아닌가?
큰돈이 전혀 아니다. 매우 작은 돈이다.
그래서, 거대 자본을 투입하는 미국을 보면 한국에서 피지컬 AI라는, 대단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 의문도 생긴다
‘한국에서 이걸 할 수 있어?’ 라는 질문 자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은 문제 같다. LLM이 한국에서 안 됐으니까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도 안 될 거라는 건, 사실 굉장히 비논리적인 얘기다. 거꾸로 접근해야 한다.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
당연히 탁월한 연구자가 필요하고, 레퍼런스 로봇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모으고 연구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GPU를 사야 하니 돈이 필요하다. 나는 이게 가능하다는 걸 실험한 거다. 굉장히 훌륭한 연구자들이 한국에 있어 이들을 모았고, 펀딩도 받았다. 그러면 한국에서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리얼월드니까 할 수 있는 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팀과 자원을 만들었으니, 이제 해내면 된다.
시작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은 갖췄다
이젠 핑계 댈 게 없다. 그간 투자자로서도 아쉬웠던 게 많은 창업자가 이런 생각을 잘 못한다. 제2의 일론 머스크라 불리는 피규어AI의 브렛 애드콕은 로봇을 전공하지도, AI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냥 ‘문샷 띵킹’을 하는 사람이다.
트럼프가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설문이 있다. 미국으로 제조 기업을 옮기겠다는 기업의 81%가 노동자 고용을 안 하고 자동화설비를 갖추겠다고 답했다.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도, 결국 로봇이 일을 해야 한다.
브렛 애드콕도, ‘노동 자체를 로봇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 선진국의 욕망이라면 자신이 그걸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모으고 돈을 모았다. 실질적으로 테슬라를 제외하면 피규어 AI가 가장 좋은 결과를 내고 있지 않나? 나도 그와 비슷한 사고를 한 거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하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교육의 문제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래를 생각하고 역산해라. 10년 뒤, 20년 뒤에 그걸 이루려면 지금 네가 뭘 해야 할까? 그걸 그냥 실행해라” 이게 사실은 인생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계획을 세우는 순서가 일반적인 것과는 정반대다
산을 오르겠다는 목표를 가졌다면 에베레스트산을 갈지 한라산을 가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데, 무슨 등산복을 살까를 먼저 생각한다. 나는 등산복 살 돈이 없으니, 에베레스트에 못 갈거라는 게 말이 되나? 등산복 살 돈이 없으면, “나는 에베레스트산 가서 사진 찍어 너한테 팔 거니까 돈을 빌려달라” 이럴 수도 있는 거다.
목표를 향해서, 합법적 범위 내에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과정이 너무 중요해서 목표를 압도해 버린다. 내 결단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야, 너는 왜 너를 믿고 투자한 LP를 버리고 그만두냐” 이렇게 접근한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게 나는 되게 아쉬웠다.
지난해, <바이라인네트워크>와의 영상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지금이 AI로 창업해서 잭팟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창업을 준비 했나?
창업을 생각하게 된 완전 시발점은 2년 반 정도 전이다. 동문이 모여서 연 ‘제1회 서울 과학고 콘퍼런스’에 스피커로 가게 됐다. 그때가 딱, 암에서 나았을 때였다.
항암치료를 하고 완치 판결을 받은 후였다
‘아, 나도 이제 약간 건강해져서 이런데 가서 얘기도 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으로 갔다. 그 콘퍼런스에 AI 세션이 있었는데, 신진우 교수를 거기서 처음 알았다. 신 교수를 비롯해서, 지금 한국 테크 시장에서 알려진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의 결론이 “GPU가 없어서 우린 망할 거야” 이거더라. 신 교수에게 “GPU를 몇 장 주면 (연구를) 할 수 있느냐” 물었더니, 의외로 별로 많지 않더라.
당시에 신 교수가 네이버 신사옥에 있었다. 네이버가 오피스는 지원하는데, GPU는 제공을 못 해줬다는 얘길 했다. 네이버가 쓸 것도 모자라니 그랬다는 거다. 슬픈 얘기다. 메타나 구글이랑 공동 연구를 하면 GPU를 무제한 쓸 수 있는데.
그래서 이 연구팀이 GPU를 쓰려고 학생들을 구글로, 메타로 인턴을 보내서 AI 동냥을 했다더라. 이건 진짜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원이 없어서 연구를 못 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세계 AI 연구계에서 논문으로 알아주는 신 교수가, GPU 문익점이라니!
한국에서 제일 똑똑한 교수가 연구를 못하면, 그건 정말 억울한 상황이다
그래서 교수님들을 30명 넘게 만났다. 처음엔 이 교수들을 창업시키려고 했다.
교수 창업 이야길 많이 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데 수많은 교수를 만나면서 알게 된 거는, 교수 한 두명이 창업한다고 해서 회사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지금의 문제들은 굉장히 많은 교수가 팀플레이를 해야 풀 수 있는 것들이다. 메타나 구글에서도 수십, 수백명의 교수가 일한다.
교수들이 앙트러프러너십(기업가적 사고)을 가지기도 상당히 어렵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기 위해 학교 수업 외에 시간을 쪼개 펀딩도 받고 사람도 뽑고 해야 하는데, 교수님들도 “그건 좀 자신 없다”라고들 말씀하더라.
그래서, 오케이! 이 교수님들을 엮어서 드림팀을 만들고, 같이 연구·개발하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로봇도 투자를 많이 했고 네트워크도 많고, AI도 아니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CEO를 하는 게 아니라, 이게 일단 되는 건지 교수님들을 규합해 보자고 시작한 거고. 팀을 만들면서 컬리에서 일하다, 최근에 그만뒀다는 류형규 CPO(최고제품책임자)부터 끌고 왔다. “친구야, 나랑 한 번 큰 거 해보자”고. 그렇게 사람들을 규합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러고 보니, 내가 대표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믿는 사람들을 모두 규합했으니?
“아니, 나는 너를 믿고 왔는데 (네가 안 하면) 누구를 믿고 이걸 하냐”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퓨처플레이에서 내 가치가 컸다면 당연히 내가 퓨처플레이에서 일하는 게 맞다. 그러나 당시에 내 가치는 그저 상징적인 수준이었다. 일단 나이 오십 먹은 사람이 20대, 30대 창업가를 찾아가 설득하고 투자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 판단은 오히려 젊은 심사역이 훨씬 더 잘한다.
회사에 크게 기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상징적인 사람으로만 남아 있는 것보다는, 펀딩을 훨씬 잘하는 다음 세대에 회사를 넘기는 게 낫다고 봤다. 여러 생각 끝에 (퓨처플레이를 그만두고 리얼월드 창업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거다.
앞서 이야기 나왔지만, 암이라는 큰 병을 겪었다. 그래서, 스트레스 많은 창업을 또 다시 한다는 게 괜찮나 싶기도 했다
암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암 판정을 받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오래 사업을 하면서 불확정한 상황에 도달하면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한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 괜찮더라. 나는 되게 행복하게 살았으니까. 그러다, 내가 걸린 암이 고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새로운 삶을 하나 더 얻은 기분이었겠다
돌아왔을 때 정신적으로 훨씬 더 강해졌다. 퓨처플레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이미 한 번 엑시트를 했고, 글로벌 컴퍼니에 회사를 팔아봤으니 이제는 창업보다는 투자회사 같은 걸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대에 맞는 걸 해야 한다고. 그런데 (암 이후에) 그런 제약이 다 사라졌다.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게 맞더라.
리얼월드는 정말 가능성이 있나
리얼월드 이야기를 해보자. 씨드가 210억원이라 큰 주목을 받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앞서 말한 것처럼 교수들에게 충분한 연구 기반을 만들어 주기에는, 즉 GPU를 마구 사주기엔 적은 돈이지 않나?
그럴 수도 있는데, 당분간은 괜찮다. 왜냐하면 요즘 트렌드가 GPU를 생각보다 적게 쓰는 트렌드로 가서다. 피지컬 AI 쪽으로 갈수록 생각보다 GPU가 적게 들어간다. 왜냐면, 이미 학습된 모델을 많이 활용할 수 있어서다. 또, 학습시켜야 하는 도메인도 생각보다 작다. 예를 들어 비디오 생성 모델은 비디오 데이터 자체가 매우 크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엔 비디오에서 인간이나 로봇의 움직임에 해당하는 부분만 빼서 쓰는 거다. 설계를 잘 하면, 의외로 학습시키는데 필요한 데이터나 컴퓨팅이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로 하진 않다.
그리고, 그 사이에 딥시크가 나오지 않았나. 결국 승자는 엔지니어링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로봇은 엣지단에서도 잘 돌아가야 하고 실시간 응답성(high Frequency)도 좋아야 한다. LLM은 질문을 하고 좀 늦게 답이 와도 큰 상관은 없지만, 로봇은 몇 초 내로 답이 안 나오면 안 된다. 그런 것을 생각해봤을 때 처음부터 GPU를 때려박는 시긍로 연구개발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겠다고, 교수님들을 포함해 모두 생각하고 있다.
*** 류중희 대표의 ‘피지컬 AI’에 대한 생각과, 리얼월드라는 회사의 현황과 추구하는 가치는 인터뷰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ㅇ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