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명의 고전 성독] 억압 풍자 -대등 사례2-

2024-10-03

조동일의 책 <대등의 길>은 역사에 숨은 대등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의 특징은 재미와 충격이다. 권력자 조롱은 동서고금에 있었다. 풍자는 위험 감수의 도전이 필요해 응축된 기지가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고도 문명의 산물이다. 무지막지한 악행에도 비비고 들어가 웃음거리로 만들 급소가 있어 날카로운 송곳으로 간지럼을 태우는 격이다. 전제 군주 시대나 현대 민주사회나 악질 권력의 속성은 대동소이하다. 그것은 우둔과 포악이다. 어리석어서 우습고, 사나워서 치를 떨게 한다.

말이 많고 격분을 잘하고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랐다. 오를 수 없는 사람이 오르도록 속임수나 수를 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만히 보니 앉은 보람도 없이 제힘으론 손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무엇엔가 조종당하는 꼴이 우습지 않은가? 허수아비나 꼭두각시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인생을 살아갈까? 신당에 울긋불긋 조화로 꽂혀있기보다는 생생한 야생화로 땅에 뿌리를 박고 씽씽 바람 맞으며 신나게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있을까? 최고 권력자가 최대의 악행을 저지를 때 냉큼 등장하지 않았는가. 그런 자가 지금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나타나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회오리바람이 아침나절 내내 불고, 소나기가 종일 퍼부을 수 있든가? 지금부터 700년도 더 전 13세기 후반, 축적된 문명의 향기가 짙은, 페르시아 문학에 이런 풍자 이야기가 있다.

어느 폭군이 은자(隱者)에게 물었다. 어떤 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냐고? 은자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가장 좋은 것은 폐하가 그저 반나절쯤 주무시는 것입니다. 그동안이라도 백성들이 해를 입지 않게 말입니다.”// 폭군이 반나절 잠자는 것을 보고/ 나는 말했다네 “그런 혼미한 상태가 잠에서 깨는 것보다 낫구나”/ 깨어 있을 때보다 잠자는 것이 더 나은 인간은/ 그런 못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네.

폭군은 옛날에도 오늘날도 있다. 예나 이제나 폭군은 자기가 폭군인 줄 전연 모른다. 그러는 사이 공동체의 구성원은 억장이 무너지고, 민생이 거덜 나고, 국격이 추락하고, 나라의 앞날이 어두워진다. 폭군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집안에서 안팎으로 죽이 맞고, 아첨꾼, 간신배, 밀정, 간첩, 아예 눈감고 귀 막은 추종자들이 폭군을 옹위해 싸돈다.

<대학>에 한 집안, 한마디 말,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한 대목이 있다. 고금에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

一家仁이면 一國興仁이요, : 한 집안이 어질면 온 나라가 흥겹게 어질고,

一家讓이면 一國興讓이요, : 한 집안이 양보하면 온 나라가 흥겹게 양보하고,

一人貪戾(탐려)면 一國作亂이니, : 한 사람이 탐욕스럽고 사나우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니,

其機如此하여, : 그 형세가 이와 같아서,

此謂一言僨事(분사)요 : 이를 일러 “한마디 말이 일을 엎어버리기도 하고,

一人定國이라하니라. :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키기도 한다.”고 하는 것이다.

*戾사나울려,

*機기틀기, 형세기,

*僨넘어질분, 실패할분,

(조동일, <대등의 길>, 143쪽 인용)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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