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사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 수준을 결정할 때 주요하게 참고하는 법원의 양형기준이 성범죄 등에서는 법정형 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판례를 근거로 양형기준을 만들다 보니 발생한 현상으로 풀이되는데, 과거의 ‘솜방망이 처벌’이 현재에도 반복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10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성폭력 범죄 등 강력범죄 유형의 양형기준이 법정형 수준보다 낮게 설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판사는 피고인을 처벌할 때 각 범죄에 대해 법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형에서 선고할 형벌의 종류를 정한 뒤 사안에 맞게 형을 가중·감경해 처벌 범위를 구체화한다. 양형기준은 판사가 이 구체화한 처벌 범위에서 어느 정도 처벌을 내릴지 결정할 때 참고하는 기준이다.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이 기준을 벗어나 판결하면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해서 합리적 이유 없이 양형기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양형위의 성폭력 범죄 양형기준을 보면 감경·가중 사유가 없는 기본양형의 경우 법정형보다 대부분 낮게 설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강간죄의 법정형은 3년 이상 유기징역이지만 양형기준의 기본양형은 2년6개월에서 5년으로 규정돼 있다. 친족 관계에 의한 특수강간죄 역시 법정형은 7년 이상이지만 양형기준의 기본양형은 5~8년이다. 장애인·13세 미만 대상 성범죄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났다.
양형위는 “양형 실무에 대한 통계분석을 기초로 원칙적으로 종전 양형 실무의 70~80%를 반영해 형량 범위를 설정한다”고 설명한다. 기존 판례를 참고해 기준을 설정했다는 뜻인데, 과거의 불합리한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 되풀이되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형위 관계자는 “전형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법정형 하한보다 (양형기준) 기본 영역 하한이 낮을 수도 있다”며 “양형실무에 대한 개선 의견이 높고 보다 엄정한 양형을 바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경우에는 규범적 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은정 의원은 “법률이 정한 형량을 무시하고 근거 없이 낮은 형량을 기본값으로 제시하는 것은 양형위원회가 스스로 사법 불신을 자초하는 행위”라며 “양형위원회는 모든 범죄유형의 기본형을 법률에 규정된 법정형을 기준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