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째 개선 없이 제자리
정당별 공약집 빼곡히 글자만 나열
스마트폰에 익숙한 2030세대 외면
“전문용어 많아 무슨 정책인지” 불만
“이걸 누가 보기나 할까 싶네요.”
6·3 대선을 8일 앞둔 26일 오전 8시57분. 좌석은커녕 손잡이도 잡기 버거운 수인분당선 지하철 안에서 직장인 김환주(28)씨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인파에 떠밀려 움츠러든 어깨 사이로 간신히 확인한 화면에는 한 뉴미디어 채널이 올린 카드뉴스가 보였다. 대선후보자의 10대 공약을 요약한 게시물이었다.
이날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김씨는 “정당이 공약집을 전자파일로 올려놔도 그걸 누가 보겠느냐”면서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화면을 확대하듯 허공에 검지와 엄지를 오므렸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출근길에 손가락으로 화면을 옮겨가며 공약집을 읽는 사람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대선 공약 정보를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접한다는 김씨는 “주변 친구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용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곳에선 공약을 제대로 찾기 어렵다. SNS에서는 채널이 선별한 정보를 편향적으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후보의 세부 공약을 확인하려면 공약집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 속엔 깨알 같은 글씨와 낯선 약어, 전문용어가 여럿 등장한다. 김씨는 “공약을 읽으면 추상적으로 다가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며 “유권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전북 익산 남중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대학원생 강건(28)씨도 이해하기 쉽고 상세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저장장치’ ‘글로벌 선진국지수’에 형광펜이 그어진 공보물을 펼쳐 보이며 “전문용어 설명을 위한 각주나 맥락을 알려주는 부연설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공약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이처럼 문자로만 나열된 공약집이 지닌 한계는 73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첫 공약집이 등장한 제2대 대통령 선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림 없이 글자만 나열하는 형태 그대로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부터 이행방법, 재원조달계획 등 항목이 구체화됐지만 유권자가 정책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설명과 그림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공동기획 : 공공의창, 한국정당학회
특별기획취재팀=조병욱·장민주·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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