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납치 정구왕 “날 총살하라”…고문 협박에도 숨긴 1가지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2부-2]

2024-10-01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제2부-2〉 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 요원의 증언②

이중스파이. 국군정보사 소속 대북공작관 정구왕 중령은 운명의 기로에 섰다. 1998년 3월 13일 중국 단둥(丹東)에서 신분을 숨긴 채 흑색(비밀) 첩보요원으로 활동하다 북한에 납치된 정구왕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북한을 살아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지만 24시간 철저히 감시당하는 처지에서 암담했다.

그렇다고 조국과 가족을 등진 반역자가 되어 북한에 눌러앉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중스파이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짜 변절을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덥석 물면 가능한 절박한 도박이었다.

역용(逆用)공작. 적의 스파이를 포섭해 우리 편을 돕는 이중스파이로 만드는 활동이다. 적의 기밀을 빼내거나 역(逆)정보를 흘려 혼란시키는 데 유용하다. 북한은 정구왕을 역용공작에 활용하려는 속셈이 있는 듯했다.

이중스파이와 역용공작의 거래

정구왕의 이중스파이 제안과 북한의 역용공작 투입은 서로 이해타산이 맞는 거래였다. 정구왕으로서는 이중스파이로 위장하는 것만이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북한으로선 한국 정보기관에 이중스파이를 심어 놓는다면 중국 내 정보사 공작원의 신상이나 북한 내에 심어 놓은 휴민트(인간정보)를 색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북한은 처음부터 정구왕을 납치했지만 예상치 않은 ‘호의’를 베풀었다. 처형은커녕 고문이나 구타 등 가혹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전향을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세뇌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피랍 직후 정구왕은 이 같은 미끼를 던져 놓고 북한의 반응을 기다렸다. 답이 없었다. 평양 인민군 병원에서 3주간 머리와 얼굴 등에 상처 봉합 수술과 치료를 받은 뒤 어은 군인병원으로 옮겨질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자 북한 보위부 산하 반탐(反探·대간첩 업무) 조직의 본격적인 신문이 시작됐다.

정구왕이 포섭한 공작원과 포섭을 지원한 북한 인물 정보, 한국 군사시설에 관한 취조가 이어졌다. 반탐 조직의 책임자는 ‘과장’으로 불렸다.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50대의 근육질이었다. 매일 저녁 그와 10분 정도의 취조가 계속됐다.

정신적인 고통은 더 심해졌다. “미인계의 덫에 걸린 개인의 일탈과 비리 사건으로 몰아가려는 게 남한 정보사의 분위기”라는 반탐과장의 전언을 다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랍 한 달이 지나도록 자신에 대한 석방이나 구조 노력이 들려오지 않았다. 절망감과 배신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끓어올랐다.

창밖으로 목련에서 꽃망울이 터져 나올 때였다. ‘부장’이란 사람이 방문했다. 카키색 인민복 차림인 왜소한 노인이었다. “내가 65살인데, 6‧25전쟁 전 38선 최전방에서 근무했다. 당시 남조선 병사들이 초소를 이탈해 ‘배고파 죽겠다’고 해 참 많이도 먹여 보냈다”고 했다. 금테 안경 뒤로 보이는 눈빛이 살아 있었다. 정구왕의 전향 의사를 떠보려는 듯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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