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쓰다 보면, 문장부호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꼼꼼하게 챙기게 된다. 문장부호는 ‘문장 각 부분 사이에 표시하여 논리적 관계를 명시하거나,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표기법의 보조수단으로 쓰이는 부호’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즉, 문장의 뜻을 돕거나 문장을 구별하여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여러 가지 부호를 말한다. 문장부호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좋은 문장을 지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장부호는 마침표, 쉼표, 물음표, 느낌표, 따옴표, 줄임표, 괄호, 화살괄호, 겹낫표, 홑낫표, 쌍점, 빗금, 줄표, 붙임표, 물결표, 드러냄표, 숨김표, 빠짐표 등 7가지 항목 25가지나 된다.
하지만, 문장부호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장부호는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 공표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부록으로 실린 것을 원안으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정착된 것이라고 한다. 근대화와 함께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 옛 글은 띄어쓰기도 문장부호도 없이 내리쓰기로 되어 있어 읽기가 쉽지 않다. 마치 요새 시인들이 쓰는 문장부호 없는 시(詩) 같다. 아니, 오늘의 시인들이 옛 문장을 흉내 낸 것이겠지…. 만약 그렇다면, 대단한 온고지신이요 법고창신이다.
문장부호를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네 인생이 보인다. 되도록 뻐근한 느낌표가 많고, 적절한 때에 느긋한 쉼표가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골치 아픈 물음표, 애매하게 머뭇거리는 말없음표, 남의 말이나 생각을 빌리거나 훔쳐온 따옴표로 가득한 삶이기 쉽다. 내 생각과 믿음으로 한세상 살기가 그렇게 어렵다.
인생을 글의 종류에 비유해보면 어떤가? 시적(詩的)인 삶, 산문적인 삶, 학술논문 같은 인생, 보고서나 결재서류 같은 생활, 광고문구 같은 삶… 내 인생은 어떤 삶이었고, 지금은 어떤가? 어쩌면, 카톡이나 SNS의 짧고 건조한 토막글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부호는 어떤 것일까? 마침표일까? 물음표일까? 말없음표일까? 아니면? 내 인생에는 느낌표가 얼마나 있었을까? 설익은 물음표 범벅은 아니었을까?
죽음은 생을 마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저 문득 멈춰버리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온전한 마침표로 끝나는 문장이 아니고, 쉼표나 말없음표 또는 물음표로 멈춘 글…. 어수선하게 살던 자리 뒷마무리도 못 하고,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떠나야 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숨을 거두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데 죽어야 하기도 하고, 정말로 아깝고 아까운 사람이 먼저 가는데 쓰레기 같은 인간은 만수무강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죽음이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자다가 죽은 이가 여러 명 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앞날이 창창하고 건강하고 할 일도 많은, 정말 아까운 이들이 그렇게 황망하게 갔을 때의 허전함이란. 김수영 시인이나 미술사학자 오주석 씨처럼 교통사고로 졸지에 떠난 이도 있다. 멋지게 써나가다가 갑자기 멈춰버린 문장을 읽는 느낌이다.
인생이란 쓰다 만 미완성 문장, 마침표 없는 문장인가? 생각해보면, 온전한 마침표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스코트 니어링처럼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사랑하는 아내의 보살핌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죽음을 두려워 말고 미리 준비하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요즈음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