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서점가에 ‘마흔’이라는 키워드가 뜨거웠다. 마흔을 타깃으로 한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인기 강연가는 마흔에 새로운 삶을 위한 수업이 필요하다며 그들을 응원했다. 책 제목에 마흔이 붙으면 다 팔린다는 말도 있었다. 책은 마흔에게 그동안 충분히 수고했으니 지금부터 노력하면 삶은 바뀔 수 있으며, ‘진짜 나’를 위한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제안하며 위로와 힐링을 주었다. 마흔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안정기이며 결혼하고 출산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을 평온할 나이라고 한다. 비혼 상태라면 골드로 자신의 삶을 자유롭고 우아하게 영위하고 있을 시기라고.
허허, 그런데 웬걸. 현실의 마흔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 어떤 시기보다 치열하다. 자유보다는 의무감에, 여유보다 팍팍함에, 우아하긴커녕 삶의 고비에서 분투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윗사람에게 치이고 아랫사람에게는 꼰대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시기라 사람을 만나는 자체가 평온할 수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학 기술이 발달하여 사람은 더 오래 산다고 하니,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는 처참한 백세 세상의 중간 시대쯤 살고 있는 정도. 어쨌든 사회에서 중요한 사람이긴 한 듯하다.
한 사람 생의 주기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인 마흔, 갓 어른이 된 대부분의 마흔들은 삶에 주어진 숙제를 차곡차곡 처리해 나가며 고군하고 또 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아이들에 맞추어 삶이 모조리 바뀌었다. 집 안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가득하고 냉장고를 열어봐도 아이들 먹을 음식 위주다. 조리법 역시 아이들의 입맛과 영양에 맞도록 만들어지고 비싸고 맛있는 음식은 아이들의 입에 먼저 들어간다. 내 옷보단 아이들 옷, 내 용돈보단 아이들 학원비가 더 중요해졌으니. 세상은 마흔에게 이제 자리 잡았을 시기라는데, 정작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저출생과 지방 소멸이란 뉴스는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뉴스보다 가까이 체감되기도 한다. 길을 걸을 때도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수적으로 적어졌으니 희소해졌고, 그래서 정말 귀하디 귀해졌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노인을 위한 존경, 청소년을 위한 배려와 청년에게 기회 제공이라는 배려 담긴 뉴스들이 당연하고도 당연하긴 하지.
그래서인가. 그냥 마흔들, 그러니까 그냥 어른들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외롭다. 가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까지, 모두의 행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 옆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이모와 고모, 삼촌들은 무엇으로 행복해야 하나. 어른들도 마음은 항상 청춘인데, 친구들과 장난칠 때 재미있고 가끔은 떼쓰고 응석 부리며 울고 싶은데. 현실은 각종 혜택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책임감과 의무감을 짊어진,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는 그저 그런 어른일 뿐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은, 나이에 맞는 격을 갖추어야 한다. 아이는 아이답게 순수하고 노인은 삶의 지혜를 나누며, 청년은 청년답게 열정적으로, 또 청소년은 학생답게 세상을 배우며 살아야 전 연령의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니 이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깜냥에 맞는 나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아무리 AI가 발달하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넘쳐나도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운다. 가까이 있는 어른이 하는 말과 행동에서 본보기를 찾고, 사랑을 받으며 마음을 배운다.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행복해야 할 것이다. 주변에 좋은 어른이 있다면 아이들이야 자동적으로 행복해질 테니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을 챙기는 달의 마침표에는 나 자신의 돌봄까지 포함되길. 수고한 나 자신을 격려하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5월의 남은 날은 어른들이 행복해질 방법을 찾아 보길. 행복이 뭐고, 사랑이 뭐고, 모르겠고 머리 아파진다면 로또라도 사자. 당첨되면 혼자 다 쓰겠다고 킥킥거리면서.
김현주 울산 청년 작가 커뮤니티 W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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