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마음
사랑하는 딸들아, 엄마가 만약 암에 걸렸고 완치 가능성이 없다면 항암치료 같은 건 받지 않을 거야. 남은 삶을 정리하고 기운이 다할 때까지 못 해본 것들을 해보면서 삶을 마칠래. 물론 죽을 때도 병원은 안 가. 집에서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준비는 다 해두었어. 아픈 건 싫으니까 진통제나 실컷 맞을 거야.
한림대의료원 류머티스내과 김현아(61) 교수가 쓴 유언장은 좀 달랐습니다. 법률 문제로 가득 찬 다른 유언장과는 달리,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지 쓰여 있거든요. 기운이 남는다면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적혀 있습니다. 돈 가지고 싸우지 않도록, 두 딸에게 재산 정리에 이의를 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죠. 그리고 죽음이 다가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며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도 적혀 있습니다.

김 교수는 살아 있는 지금, 바로 유언장을 써보라고 조언합니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써두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기를 추천하죠. 56세에 유언장 초고를 쓴 김 교수에게 “너무 일찍 쓴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합니다. “제가 내일 당장 죽을지 어떻게 알아요?”
내 마지막을 생각하는 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김 교수는 “죽음을 생각하면 반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지 결정할 수 있는 건 본인뿐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30년 넘게 의사로 살며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을 수차례 봐 온 김 교수는 필요한 죽음 준비 과정을 모아 『죽음을 배우는 시간』(창비)을 펴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김 교수가 직접 쓴 유언장이 담겨 있죠. 이 유언장 때문이었을까요. 이후 삶의 태도가 바뀐 김 교수는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창비)에서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둘째 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김 교수는 “죽음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유언장은 어딘가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딸들과 엄마의 죽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스스럼없이 농담한다고 하는데요. 그에게 유쾌하고 솔직하게 유언장 쓰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더,마음'의 특별기획, 죽음이란 무엇인가
①“왜 하필 나야!” 절규했다…아빠·엄마·할머니·남편잃은 그녀
②“죽을 권리 왜 안 줍니까” 4000명 보낸 의사, 안락사 찬성하는 이유
③“집사람 따라가” 노인의 편지…형사는 그 밥값에 울었다
📜 지금, 당신이 유언장을 써야 하는 이유
유언장을 왜 써야 하나요?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잘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생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대비가 안 되는 거죠. 죽음 준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그중 가장 확실하게 물적으로 남는 건 유언장이잖아요. 특히 재산 정리를 못해서 형제들끼리 원수가 되는 가족들 여럿 봤어요. 내 자식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유언장은 죽음을 앞두고 쓰는 거 아닌가요?
내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아요. 불의의 사고로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 지금, 살아 있을 때 써야죠. 30~40대라도 써 보세요. 2019년에 미국 단기 연수를 다녀왔는데, 그때 연구소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미국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본인은 이미 유언장을 써놨다고요. “정리할 재산이 있고, 남겨질 소중한 존재가 있다면 유언장을 꼭 써야 한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크게 끄덕였죠.
예를 들어, 어떤 내용을 써야 할까요?
재산 정리는 재산이 많은 사람만 하는 건 아니에요. 소유물이 있는 경우, 누구에게 무엇을 줄지 정하는 거예요. 슬퍼할 배우자, 가족, 친구들에게 남길 것도 적어 두고요. 사랑하는 반려견의 거처도 적는 거죠. 이건 머리가 맑을 때 정리해야 합니다. 나이 들수록, 특히 임종에 가까워질수록 지력이 많이 떨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