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늦게 도착한 만큼 단단해진 이야기들이 있다. 소설가 최아현의 첫 소설집 ‘밍키(고유서가·1만6,800원)’는 등단 후, 7년 만에 세상에 나온 책이다.
최 작가는 꾸준히 이야기를 써왔지만, 첫 책으로 독자 앞에 서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은 공백이 아니라,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차분히 가다듬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책에는 표제작 ‘밍키’를 비롯해 ‘아침 대화’, ‘리빙포인트’, ‘독립’, ‘대원의 소원’, ‘충분한 실수’, ‘뿔 있으세요?’, ‘그런 일이 있었다’까지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품 속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다. 가족, 직장, 이웃이라는 익숙한 관계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 평범함은 소설의 한계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작가는 일상의 표면 아래에 쌓인 감정의 균열, 말하지 못한 마음, 어긋난 이해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소설가가 포착한 핵심 장면은 ‘대화는 있지만 소통은 없는’ 관계들이다. ‘아침 대화’에서는 사춘기 딸과 갱년기 엄마가 매일 마주 앉지만, 서로의 마음에는 좀처럼 닿지 못한다. ‘독립’은 독립을 꿈꾸는 딸과 정서적으로 떠나지 못한 엄마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을 그린다. ‘밍키’에서는 가족 안에서 끝내 이해받지 못했던 감정이 한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를 통해 은밀하게 봉합된다.
최 작가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고,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선택과 망설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오래 머문다. 그 느린 호흡 속에서 독자는 관계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소외와 단절, 정서적 고립은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정조지만, 그 끝에는 늘 관계를 향한 희미한 기대가 남아 있다.
빠르게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문단의 속도와 달리, 최아현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잘 쓰는 것’보다 ‘끝까지 쓰는 것’을 택했고, 그 선택은 이번 소설집의 밀도로 증명된다. 인물들의 삶이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않듯, 작가 역시 긴 시간을 돌아 이 책에 이르렀다.
큰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내세우지 않는 대신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순간들, 별일 아닌 듯 여겼던 감정들을 조용히 불러 세우는 문장들. 소설은 여기서 묻는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오해한 채 살아가고 있는가. 가장 보통의 삶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작가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최 작가는 “쓰는 일이 덜컥 무서워져 도망갔다가도 끝내 돌아오고 말았다”며 “돌이켜보면 소설의 면면들은 언제나 세상사로부터 뒷걸음치지 않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익산 출생으로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침 대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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