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출신이라고 쫄지 마라

2025-04-22

나는 그동안 엘리트 전문가와 관료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모든 문제를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단순한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은 전문가에게 위임해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관료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관료가 일종의 ‘전문가적 야당’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정권의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절제된 브레이크를 거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탄핵 정국을 지나며,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을 보며 내 생각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물론 여전히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풀자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전문가나 관료의 행태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이 더 시급해 보인다. 이제는 엘리트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그들에게 당신은 이상하다고 말해야 한다.

4월2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전 세계를 향해 ‘관세폭탄’을 터뜨렸다. 미국에 대한 관세율, 환율 조작, 비관세 장벽 등을 고려했다며 ‘상호관세율’을 계산해 공개한 것이다. 계산 결과는 중국 67%, 대만 64%, 한국 50%, 일본 46% 등이었다. 그는 이 수치를 절반으로 깎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계산법은 곧 도마에 올랐다.

이튿날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대표가 소셜미디어에 계산법의 황당함을 폭로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상대국으로부터의 수입액으로 단순 나눈 수치일 뿐, 실제 관세율이나 비관세 장벽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1315억달러를 수출하고 658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를 나누면 50%가 나온다.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미국 상무부는 계산 근거를 공개했지만, 방식은 다르지 않았다. 경제학적으로는 말 그대로 비판이 넘쳐난다.

그러나 또 중요한 문제가 있다. 스티븐 미런, 스콧 베선트, 피터 나바로 등 이른바 ‘엘리트 경제 참모’들이 어떻게 하루 만에 허점이 드러날 계산법을, 세계 경제에 영향을 줄 정책의 이름으로 내놓을 수 있었을까?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견제받지 않는 엘리트의 위험성이다. 세계 환율은 출렁이고 주식시장은 폭락했지만, 그들에겐 이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전략 게임’처럼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4월7일, 스티븐 미런 경제정책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워싱턴 허드슨연구소 연단에 섰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연설문을 보고 나는 기가 막혔다. 그는 미국이 세계에 제공하는 ‘공공재’의 비용을 다른 국가들과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공공재란 ‘안보’ ‘미국 달러’ ‘미국 국채’였다. 이 엘리트 책사들은 지금도 미국이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달러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국제경제학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예컨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가 미국 시장을 뚫고 달러를 벌고, 그 일부를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당연한 경제 흐름을 ‘시혜’라 주장하는 모습은 오만하다. 더 놀라운 건, 미런이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아, 생각해보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다. 하버드, 물론 좋은 학교다. 훌륭한 사람도 많지만, 이상한 사람도 많다. 쫄지 마시라.

미런 등은 여전히 트리핀 딜레마, 즉 외국 정부의 달러 보유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유발한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는 이런 칼럼이 실렸다. “미런, 우리는 더 이상 트리핀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아.”

자료에 따르면, 2003~2014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대비 외국 정부의 미국 자산 투자는 평균적으로 70% 정도였다. 수치상 어느 정도 트리핀 딜레마의 조건이 성립했다. 그러나 2015~2024년 사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대비 외국 정부의 미국 자산 투자는 5%에도 못 미친다. 이제 미국의 적자를 외국의 달러 보유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복잡한 얘기는 생략하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미런은 주요 반론에 진지하게 반박할 의지도, 내공도 없을 것이다. 왜냐고?그에게 중요한 건 국민도, 학문적 타당성도 아닌, 그의 ‘전략적 관세 정책’에 매료된 트럼프 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탄핵 정국에서 한덕수 권한대행과 최상목 경제부총리의 모호한 행동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러나 의아해할 일 아니었다. 그들이 바라본 대상은 국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상한 엘리트의 나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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