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긴가민가하던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사실로 확인됐다.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 병력이 이미 1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외부 세계 뿐 아니라 러시아와 북한 주민들까지도 놀라게 할 특이한 사건이다.
물론 북한의 해외 파병이 처음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 자원하여 전투기 조종사와 선무반 인원 등을 파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동의 전장에도 간 사실이 있다. 하지만 대규모의 전투 부대를 보낸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더구나 파견 지역은 제3세계 분쟁지역이 아니라 유럽 그리고 러시아다. 당연히 러시아의 전신 소련이 70여 년 전 한반도에 적극 개입하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북, 파병 아닌 훈련으로 국민 속여
산악전 병력이 평야 적응할지 의문
10대 후반서 20대 초반 어린 병사
전쟁터에서 안타깝게 희생될 것
한국 전쟁 중의 일화들 가운데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1950년 가을 한창 북진 중이던 영국군 부대에 한 그룹의 북한군 병사들이 환성을 지르며 달려온 일이 있었다. 이들은 싸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항복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미군과 다른 군복을 입고 있는 영국군을, 자신들이 간절히 고대하던 소련군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영국군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곧 상황을 알아채고 자신들이 소련군인 척했다. 북한군 병사들은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면서 담배를 꺼내 권하는 등 친밀을 다졌다. 양측은 “브이 루스키(러시아 사람이냐)?” “다(그렇다)” “하라쇼(좋다)” 등 몇 마디 밖에 모르는 러시아 말로 대화 아닌 대화를 이어가며 끌어안고 즐거워 했다. 그 사이 영국군 지휘관은 부대원들에게 슬며시 눈짓을 주었고, 영국 병사들은 갑자기 총을 꺼내 발포를 시작했다. 북한군 병사들은 당황할 틈도 없이 당했다. 떨어져 있던 병사 몇몇은 영문도 모르고 도주했다. 현장 이탈에 성공한 북한군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런 오해는 일반 북한군 병사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최상부에도 있었다. 한반도를 전쟁으로 평정하겠다는 김일성에게 개전 허락과 함께 지원을 약속하면서 스탈린은 한가지 조건을 확실하게 했다. 즉, 소련은 어떤 경우에도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일성도 이것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사태가 어렵게 되자 약속을 몰라라하고 소련의 도움을 청하였다. 스탈린의 답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았다. 희극같기도 하면서 비극일 수 밖에 없는 앞의 일화는 아무리 가깝다고 할지라도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이나 기대가 현실과 일치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제 곧 전장에 투입된다는 북한군의 실적과 기여 그리고 양국 관계의 장기적 전망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196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이어진 남한의 월남 파병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두 경우의 유사점 때문이 아니라 대조 때문이다. 남한의 경우 월남 파병은 온세상에 널리 알리었고 또 알려진 사건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크게 홍보하였고 참전하는 군 부대들을 위하여 성대한 환송식도 거행하였다. 미국과 월남도 미리부터 한국의 참전을 자국민에게 적극 알리었다. 파병 사실을 끝까지 비밀로 하고 이미 모든 것이 알려진 후에도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다”와 같은 말로 얼버무린 러시아나 애초부터 이를 비밀로 숨기고 파병이 아니라 훈련 중이라는 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북한과는 대조가 된다.
그 위에 더 큰 차이는 남한의 경우 이 참전이 크게 인기가 있어서 군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지에 가려는 열성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같은 인기 가요가 월남 파병이 한국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 기획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 동기로는 아마도 가시적인 물질적 혜택 외에 해외 활동에 목말라 하던 당시 한국인들의 정서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당사국인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상황과는 매우 다른 현상이었다. 이 점 역시 현재 북한 주민들이나 정부의 행태와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북한과 러시아는 해방 직후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정부 차원이나 주민들 상호간에 각별한 친교나 이해의 경험이 없다. 양자 사이는 멀고 먼 타인일 뿐이다. 더구나 러시아에는 권위주의 정부와는 별도로 반정부 활동만 제외하면 상당한 자율성을 누리는 시민 사회가 있다. 그들이 북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기 어렵다. 전쟁에서 북한군의 도움을 받는 것을 놓고 러시아에서 좋은 여론이 생길지 의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서로가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끝으로 북한군의 전투 역량에 관하여서도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이들은 특전단 병사들이 아니라 산악전 위주의 경보병들이어서 큰 화력이 난무하는 평야 전투에서 어느 정도 전투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병사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정부는 파병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는 사이 전장의 그들은 하나씩 둘씩 희생될 것이다. 뻔히 예상되는 어린 병사들의 희생이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