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은 108명이다. 12·3 비상계엄 후 75일간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거칠게 나눠보면 네 부류 정도로 구분된다.
‘자기파괴적’ 비상계엄으로 수렁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 구하기에 나선 구출조에 두 부류가 포함된다. 구출조 선봉대에는 당 지도부와 김기현·나경원·윤상현 의원 등 중진들, 강성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서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전광훈 목사 주최 집회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윤 대통령 측 주장을 개별 기자회견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한다.
다음으로 선봉대 뒤에서 밧줄을 잡아주는 구출조 후방 지원대가 있다. 선봉대만큼 과격하진 않지만 소속 지역 단위에서 열리는 탄핵반대 집회에 얼굴을 비추고, 국회 상임위원회나 대정부질문 등에 나서 당 주류의 논리를 뒷받침한다. 김상욱 의원 등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극소수 당내 ‘왕따’ 의원도 존재한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국민의힘의 변화를 촉구하지만 당내 세력화에는 실패했다.
주목하고 싶은 건 마지막 부류인 ‘그림자’들이다. 절반은 족히 차지할 그림자 의원들은 윤 대통령 수호 집회나 체포영장 집행 저지 현장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그들의 SNS는 지역구 현안에서의 개별적 성취나 모두의 슬픔인 참사에 대한 애도로 채워져 있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두고 공개적인 의견표출은 자제한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반대 당론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고, 당론에 따라 적극 움직이기에는 다른 생각이 많다. 이 중 일부는 ‘적절한’ 시점이 오면 자연스럽게 윤 대통령이나 전광훈 등 극단적 지지층과 절연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탄광 속 카나리아’ 역할을 강조하던 의원, 늘 정통 보수의 가치를 강조하던 의원 등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다.
소극적 대응을 택한 의원들을 한 묶음으로 둔 건 어쩔 수 없이 편의적이다. 비상계엄은 틀렸지만 탄핵은 안 된다는 이들, 계엄도 탄핵도 틀렸지만 지지층 결집에 머리가 복잡해진 이들, 그저 자리 보전 셈법이 우선인 이들 등 그 안에도 여러 결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침묵은 복잡다단한 결을 드러내지 않는다. 침묵 역시 정치의 방식이라고, 그 안에도 고뇌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알아서 읽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현실에서는 다수의 묵인이 당의 우경화를 돕고 있다. 암묵적 동의 속에 극단주의 세력이 제도권 정치 안으로 발을 넓혀 가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대결 정치 골은 깊어졌다. 극단주의 세력이 국민의힘에 청구서를 내밀 날도 머지않았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 그림자 의원들이 차기주자 편에 슬그머니 줄 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낯익은, 그리고 유력해 보이는 시나리오다. 일부가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도 그려진다. 그때 이들의 선택은 갑작스러운 ‘유턴’으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일의 과정을 쌓는 민주적 절차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행위가 평가대에 오를 순간은 언제고 온다. 역시 외부의 충격 속에 그림자를 벗는 것은 헌법기관의 당당한 선택 같지가 않다. 어떤 방향이든 스스로 그림자 밖으로 걸어나와 평가를 받는 쪽이 낫다. 그 방향은 공당의 가치에 부합하는 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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