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밀 파종 시기가 지연된 상황에서 올 2월 몰아닥친 강추위로 밀 생육이 크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밀 자급률 목표 달성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에 따르면 밥쌀용 벼·콩 등 하계작물과 밀을 이모작하는 농가는 늦어도 11월20일 전까지는 밀 파종을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10∼11월 남부권에 비가 자주 내리면서 12월에 파종한 농가가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본지 2024년 11월25일자 8면 보도).
석달 후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이달 13일 찾은 전북 정읍의 밀 생산단지는 눈을 의심케 했다. 이맘때면 파릇파릇해야 할 경지 곳곳이 황량하게 비어 마치 중앙아시아 사막지대처럼 보였다.
밀농가 노지섭씨(64)는 “지난해 파종을 해야 할 때 비가 많이 와 농기계가 땅에 진입할 수 없었다”며 “비 그치기를 기다려 12월에 파종했는데 이후 기상악화로 생육이 더뎌 올해 이모작 벼 모내기 일정을 맞추지 못할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호남지역은 국내 밀 재배면적의 70%를 차지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남·북의 올해 2월 평균기온은 각각 1.5℃, 영하 0.7℃로 지난해(6.4℃, 4.6℃)에 비해 5℃ 가까이 낮았다. 농가들에 따르면 밀은 보통 땅이 녹는 2월 중순부터 월동 후 새끼치기(분얼)가 왕성해진다. 하지만 올해는 기온이 크게 낮아 분얼 현상이 저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철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명예연구관은 “모내기 일정에 맞춰 밀을 일찍 수확하면 품질·수량 모두 저하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5월엔 이상고온으로 2024년산 밀 생산량이 저조했는데 올해도 연속 흉작이 들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보리값 상승도 밀 재배 의욕을 떨어뜨린 것으로 파악됐다. 농가와 농협에 따르면 지난해 제빵용 밀의 정부 수매단가(1등급 기준)는 40㎏당 4만원이었지만, 보리 산지가격은 40㎏당 5만원을 넘었다. 노씨는 “보리 가격이 오르면서 밀에서 보리로 작목을 전환한 농가가 많다”면서 “더욱이 보리는 밀보다 수확시기가 7∼10일 빨라 벼 이모작에 유리해 농가들이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2020년 수립한 ‘밀산업 육성기본계획’에 따르면 2025년 밀 자급률 목표치는 5%다. 하지만 2024년산 밀 생산량은 3만7376t에 그쳐 자급률은 1.45%에 머물렀다. 올해 자급률 목표치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생장이 조금 늦더라도 추가적인 고온 피해와 습해가 없다면 밀 생산이 정상화될 수도 있다”면서 “밀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신품종 개발, ‘무굴착 암거배수 기술’ 보급 등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읍=조영창 기자 changsea@nongmin.com